"척추수술 직후 마비…다른 원인 없다면 의료과실"

입력 2026-08-17 18:10
수정 2026-08-18 00:24
척추 수술 직후 하지 마비와 배변장애 등이 발생했고 이를 설명할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면 의료진 과실로 증상이 생겼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A씨가 B병원 운영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지난달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 등으로 B병원을 찾은 A씨는 2018년 5월 척추내시경을 이용해 요추 2~3번 부위를 수술받았다. A씨는 수술 직후 오른쪽 다리 마비와 엉덩이 통증, 배변장애 등을 호소했다. B병원은 같은 해 6월 후속 수술을 했지만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은 A씨는 “B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신경이 손상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2024년 2월 병원이 A씨에게 1억2277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 신체감정의는 A씨 증상이 척추 아래쪽 말꼬리 모양 신경다발이 압박돼 나타나는 마미증후군에 해당한다는 소견을 냈다. 1심 재판부는 B병원 의료진이 내시경 수술 과정에서 신경을 손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항소심은 병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료진이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했고, 수술 특성상 최선을 다하더라도 수술 부위 주변 신경이 자극돼 이상 증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씨에게 나타난 마미증후군의 원인으로 이 사건 수술 외에 다른 객관적 요인을 찾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수술 후 증상이 발생한 경우 의료상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여러 정황이 증명된다면 해당 증상이 의료상 과실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전문적인 의료행위 과정에서 주의 의무 위반이 있었는지를 일반 환자가 직접 밝혀내기 어렵다는 의료소송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수술 직후 촬영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에도 주목했다. 검사 결과에는 수술 부위 주변에 혈성 액체가 고여 척수 아래쪽 신경다발인 말총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심각한 중앙부 압박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B병원은 수술기록지에 “수술 중 특별한 사건은 없었고 환자 상태는 안정적”이라고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