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자리 지키지 못해 자멸하는 자유민주주의

입력 2026-08-14 17:34

1989년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26세의 청년이 25만 명의 군중 앞에 섰다. 그는 소련군 철수와 자유선거를 요구하며 공산주의 체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 연설의 주인공은 빅토르 오르반. 단숨에 그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로부터 25년 뒤, 헝가리 총리가 된 오르반은 ‘비자유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청년은 어떻게 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지도자가 됐을까.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세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신작 <자유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바로 그 25년을 해부한다. 원서와 한국어판이 지난 11일 동시 출간된 신작이다.

아세모글루는 한 정치인의 변절사를 넘어 지난 반세기 자유민주주의가 걸어온 궤적을 되짚는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질 때만 해도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힘을 얻고 시민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불신한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저자의 대답은 도발적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포퓰리스트나 소셜 미디어만이 아니다. 자유주의가 먼저 실패했다. 반자유주의의 부상은 그 실패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가 돌아보는 출발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당시 서구 자유민주주의는 꽤 오랫동안 약속을 지켰다.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의 임금도 올랐고 교육·의료 같은 공공서비스가 확대됐다. 대량생산에는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고 노조는 이들에게 협상력을 제공했다. 성장의 과실이 비교적 넓게 퍼지면서 평범한 노동자도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공동 번영’과 결합했던 시기다.

1970년대 이후 균열이 시작됐다. 자동화와 세계화, 제조업 쇠퇴로 안정적인 중간숙련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국에서 1970년대 말 이후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1.5% 넘게 증가했지만, 중위임금 상승률은 이전의 연 2.5% 수준에서 0.45%로 주저앉았다. 디지털 경제의 혜택은 자본 소유자와 고숙련 대졸자에게 집중됐다. 한때 노동자와 손잡았던 자유주의 정당의 중심에도 고학력 전문직이 자리 잡았다.

저자는 여기서 자유주의가 두 가지 죄를 저질렀다고 진단한다. 먼저 ‘부작위의 죄’다. 탈산업화로 노동계층의 일자리와 공동체가 무너지는 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둘째는 ‘작위의 죄’다. 노동계층과 멀어진 엘리트들이 표현의 자유와 자치, 공동체라는 자유주의의 원칙을 스스로 저버리고,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깨우친 사람들의 선의에서 출발해 사람들을 통제하고자 했던 시도, 즉 ‘사회공학’을 비판한다.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목표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무엇이 옳은지 전문가와 고학력층이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이다. 특정한 언어나 가치가 도덕적 표준이 되고 이견은 설득하고 토론할 대상이 아니라 교정해야 할 오류로 취급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자치보다 ‘올바른 가치’가 앞서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결과가 의도와 반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자신의 일자리와 공동체가 무너지는 동안 가치관까지 교정당한다고 느낀 노동계층의 반발은 우파 포퓰리즘의 자양분이 됐다. 소셜미디어는 양쪽의 분노를 증폭시키며 문화전쟁의 악순환에 가속도를 붙였다.

해법으로 저자가 내놓는 것은 ‘노동계층 자유주의’다. 공동체를 자유주의의 기둥으로 복원하고 표현의 자유와 자치를 되살리는 동시에, 좋은 일자리와 노동자의 정치적 목소리를 회복해 ‘공동 번영’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약속을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인공지능(AI)에 대한 그의 입장은 전작 <권력과 진보>의 연장선에 있다. 기술의 발전 방향은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선택의 결과라는 게 그의 오랜 주장이다. 지금처럼 AI가 사람을 대체하고 비용을 줄이는 자동화에 집중된다면 디지털 혁명이 낳은 불평등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노동자의 역량을 키우고 새로운 업무를 만들어내는 ‘노동자 친화적 AI’에 투자한다면 기술은 공동 번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