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연만 5회차에요. 끝날 때까지 3번 더 예매해서 총 8번 와요!"
지난 11일 오후 9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공연을 보고 나온 조성모 씨(28)의 모습은 일반 관람객과 사뭇 달랐다. 머리와 등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조씨뿐만이 아니었다. 공연을 다 보고 나온 관람객들은 "오랜만에 실컷 뛰었다", "내일 근육통 올 거 같다"며 공연장을 나섰다. 이날 '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을 관람한 관람객들은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지 않았다. 운동화를 신고 배우를 따라 뛰어다니며 공연을 관람했다.
2030 사이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이머시브 공연(몰입형 공연)'이 인기다. 한 번 보고 끝나는 관람이 아니라 2회차를 넘어 5회차, 10회차까지 공연장을 찾는 '이머시브 공연 덕후'가 등장할 정도다. 어떤 배우를 따라가느냐에 따라 보게 되는 장면과 알게 되는 이야기가 달라져,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관객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 번의 관람만으로는 공연에 숨겨진 여러 이야기를 경험하기 어려운 만큼, 여러 배우를 따라가기 위해 다시 공연장을 찾는 '덕후'들이 생겨나고 있다.객석도, 관람객도 없다…운동화 신고 뛰는 '신입 단원'들
이날 '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공연장 입구는 37명의 관람객들로 길게 줄이 늘어섰다. 한 회차당 입장하는 관람객 수는 50명이다. 입장객의 절반 이상이 이른 시간부터 대기하는 이유는 '프리쇼'에 우선 입장하기 위해서였다. 이머시브 공연은 입장하면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 짐을 내려놓는 순간 롯데월드 공연팀의 '신입 단원'이 돼 선배, 연출, 학예연구사와 함께 리허설을 하며 공연을 준비한다.
이름표를 적고 멀뚱히 서 있자, 2년차 선배가 다가와 "넌 어떤 전형으로 들어왔어?"라고 물었다.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건 것이다. 여기서는 "네?"라며 반문하거나 당황하면 안 된다. 능청스럽게 "백수라 불쌍하다고 연민 전형으로 들어왔어요"라는 식으로 답해야 한다. 관객이 아닌 신입단원이기 때문이다. 고참 선배가 들어서면 다 같이 절을 하면서 인사하기도 했다. 관객이 연극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본 연극이 시작되면, 관객은 저주가 풀려 나타난 역귀를 피해 생존해야 한다. 저주를 풀 해답을 찾기 위해 배우들을 따라가거나 혼자 돌아다녀도 된다. 단 역귀에게 잡히면 똑같이 역귀가 돼 규칙상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날 관람객들은 배우들이 문제를 해결하다 싸우는 걸 보면서 "조용히 해주세요 들키겠어요"라고 말을 걸며 걱정했다. 역귀를 피하다 신발이 벗겨지는 관람객도 있었다. 관객이라기보다 실제 신입 단원이 된 듯 공연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이혜아 씨(26)는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서 아는 내용이 달라지고 알게 된 정보가 달라서 n회차하는 의미가 있을 거 같다"며 "게다가 단순히 배우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배우들이랑 대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몰입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약 8039㎡ 규모의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전체를 무대 삼아 뛰어다니고, 연극의 일원이 돼 서사 자체를 체험할 수 있는 셈이다.이머시브 공연 전체 예매율 '100%'…2030 비중은 80%
관객이 직접 공연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에 매력을 느끼는 2030이 늘면서 이머시브 공연 시장도 커지고 있다. 이머시브 공연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롯데월드에 따르면 지난 6월 26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진행되는 공연 전체 기간 예매율은 100%에 달했다. 이중 2030의 예매율은 80% 이상으로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 11일 기준 최다 n회차 관람객의 관람 횟수는 6회차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언급량도 증가세를 탔다. 소셜 빅데이터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달 12일~이달 11일 기준 '이머시브 공연' 언급량은 지난해보다 195.38% 늘었다.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린 대표작으로는 '슬립 노 모어'가 꼽힌다. '슬립 노 모어'는 10회차 이상 관람객부터 팬덤 오픈채팅방까지 형성될 정도로 이머시브 공연의 '덕질 문화'를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2003년 런던에서 시작해 뉴욕과 상하이 등으로 무대를 넓힌 세계적인 흥행작이다.
이머시브 공연 덕후들은 재관람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의 경우 8회 관람하면 첫 방문 티켓 5만원에 재방문 티켓 3만5000원씩을 더해 티켓값만 29만5000원이 든다. '슬립 노 모어'는 첫 방문 티켓이 20만원, 재방문은 16만~18만원 수준이지만 10회차 이상 관람하는 덕후들도 나온다. 직장인 서모 씨(30)는 "공연을 보다 좋아하는 배우가 생겨 슬노모(슬립 노 모어)를 10번 넘게 봤다"며 "볼 때마다 다른 장면을 경험할 수 있어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테마파크에서도 이머시브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용인 민속박물관이 대표적이다. 공포 콘텐츠로 유명한 용인 한국민속촌은 올해 처음 이머시브 콘텐츠 '심야귀행'을 선보였다. 서울랜드 또한 이머시브 콘텐츠 '데드 퍼레이드'를 올해 처음으로 운영한다.
업계에서는 참가자가 주체적으로 체험을 이끌어가는 콘텐츠가 대세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지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학예사는 "최근 방탈출이 이머시브 장르와 결합해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서사에 개입하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이머시브 공연’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박물관이 더 이상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트렌디한 체험으로 가득한 하나의 ‘어트랙션’으로 인식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팬덤의 '설렘'은 단순 '덕질' 소비를 넘어서 실질적인 경제 지표를 움직이는 '덕질 경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K-컬처를 매개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총망라해 대중의 열광이 어떻게 '설레는 소비'로 치환되는지 그 이면의 수익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을 날카롭게 포착하고자 합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