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 관객 앞둔 오디세이…오디세우스의 비밀 병기는 사실 '이 술'이었다 [정인성의 예술 한잔]

입력 2026-08-20 16:13
수정 2026-08-20 16:20
할리우드 영화 팬들 사이에는 유명한 밈이 있다. 바로 ‘맷 데이먼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영화는 무조건 성공한다’는 법칙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에서 미국으로 귀환해야 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부터 화성에서 조난당해 지구 복귀를 시도했던 <마션>까지, 맷 데이먼은 집으로 돌아가기가 참 쉽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 속 여정 역시 만만치 않다. 그가 연기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전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에는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퇴근 시간이 한 시간 넘게 걸린다고 불평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이번에도 맷 데이먼의 귀갓길이 고되었던 만큼, <오디세이>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됐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원작 <오뒷세이아>를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을 녹여냈다. 원작 속 오디세우스는 지력과 무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정통파 전략보다는 임기응변과 꾀에 능한 타입으로, 몇 가지 사례만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려 밭에 소금을 뿌리며 미친 척을 했고, 키클롭스(외눈박이 거인)를 속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노바디(아무도 아닌 자)’라 칭하기도 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 작전을 기획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놀란 버전의 오디세우스는 조금 결이 다르다. 가장 핵심인 트로이 목마를 제외하고는 앞서 말한 에피소드를 생략했으며, 그보다는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안고 있는 내면의 고뇌를 깊이 있게 조명했다. 얼마 전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 박찬욱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봤다. 박 감독이 ‘현대사회에서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언급하자, 놀란은 ‘원작을 가져와 자신만의 것으로 재해석하고, 그 안에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깊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역시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약 400년이 지난 뒤 쓰였으니, 당시 저자의 시대적 관점이 깊게 스며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10년의 세월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다. 식량을 구하러 간 동굴에서 키클롭스에게 갇혀 동료들이 잡아먹히고, 키르케의 섬에서는 정찰대가 마법 약을 마시고 돼지로 변하는 수모를 겪는다. 감미로운 노래로 항해사를 홀려 배를 난파시키는 세이렌 자매를 만나 부하를 잃기도 하고, 배 전체를 삼키는 소용돌이와 부하 6명을 희생시켜야 하는 괴물 사이에서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결국 모든 동료와 배를 잃은 채 홀로 떠내려간 곳이 바로 요정 칼립소의 섬이었다. 오디세우스에게 반한 칼립소는 불사의 삶을 약속하며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연꽃으로 그를 유혹했고, 그렇게 7년을 묶어두었다. 전쟁 10년, 방황 10년. 고향에 다다르기까지 무려 2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이처럼 숱한 고난의 여정 속에서 술은 심심찮게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는 스쳐 지나가듯 다뤄지지만, 원작 <오뒷세이아>에서는 서사의 중요한 열쇠로 그 존재감을 선명히 드러낸다. 여기서 등장하는 술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와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대목은 단연 키클롭스의 동굴 에피소드다. 오디세우스는 향긋한 와인을 가득 채운 염소가죽 부대 하나를 챙긴 채, 자신의 가장 유능한 정예 부하 열두 명을 이끌고 거인의 동굴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것은 가히 신적인 음료였소. 그의 집안에서 그것에 관해 알고 있는 하녀나 시녀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그 자신과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부만이 알고 있었지요. 그들이 꿀처럼 달콤한 불그레한 그 포도주를 마실 때면 그는 그것을 한 잔 가득 채워 스무 홉의 물에다 붓곤 했소. 그러면 희석용 동이에서 신기하고 달콤한 향이 올라왔고, 그때는 절제한다는 것이 그대에게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닐 것이오. 나는 바로 그 포도주를 큰 가죽 부대에 가득 채워 갔고 길양식도 가죽 자루에 넣어 갔소.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숲, p.199)

이 와인은 에우안테스의 아들 마론에게 받은 것으로, 물을 전혀 섞지 않은 달콤한 원액이었다. 당시 고대 그리스에는 지금과 달리 와인에 물을 타서 마시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오히려 원액 그대로 마시는 행위는 야만인들의 습성으로 여겨졌을 정도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술을 기울이며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즐겼는데, 이 모임이 바로 오늘날 심포지엄의 어원이 된 심포지온(Symposion)이다. 이들은 크라테르라는 큰 그릇에 와인과 물을 섞어 마셨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희석법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아테네인들에게 직접 전수해 준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와인이 와인과 물을 1대 3 정도의 비율로 섞는 수준이었다면, 오디세우스가 챙긴 와인은 무려 1대 20의 비율로 물을 섞어야 할 만큼 강렬하게 농축된 독주였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이 어마어마한 원액을 품에 안고 거인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동굴 속에서 키클롭스와의 우호적인 만남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것은 부하 둘이 잡아먹히고 동굴에 갇히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오디세우스는 기지를 발휘해 키클롭스에게 와인을 권한다. 인간에게 맛있는 술은 괴물에게도 맛있는 법. 와인 맛에 반한 키클롭스는 크게 기뻐하며 연거푸 세 잔을 마시더니, 그 대가로 선물을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그 선물이라는 것은 다른 동료들을 먼저 먹은 뒤, 오디세우스를 가장 나중에 잡아먹겠다는 제안이었다. 오디세우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는 와인에 취한 키클롭스가 깊은 잠에 빠지자, 뾰족하게 다듬어 불에 달군 올리브나무 몽둥이로 거인의 하나뿐인 눈을 찌르고 탈출에 성공한다. 와인이 아니었으면 그의 모험은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역시 맛있는 술은 쓸모가 가득하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왜 와인을 이토록 진하게 만들어 물에 섞어 마셨을까? 비밀은 보관 기술에 있었다. 냉장 장비가 없던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와인이 쉽게 산화되어 식초로 변하곤 했다. 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당도를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수확한 포도를 즉시 즙내지 않고, 짚 멍석이나 선반 위에 올려 바짝 말렸다.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수분의 10~50%를 증발시키면 포도 알맹이 속 당분과 산도가 극도로 농축되고 발효 과정에서 알코올 도수는 보다 높아진다. 덕분에 와인이 부패하지 않고 장기간 수송 과정에서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과실향을 넘어 말린 과일, 꿀, 견과류, 정향 등이 어우러진 진득하고 복합적인 아로마가 형성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한 이 건조 양조 기법은 오늘날 와인 용어로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 불리며, 이러한 기법으로 만든 와인을 파시토(Passito)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파시토 디 판텔레리아 DOC(Passito di Pantelleria DOC)는 시칠리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한 이탈리아 최남단 화산섬 판텔레리아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부여되는 명칭이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접한 사람이라면 이 섬의 위치가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판텔레리아는 오디세우스가 10년의 방황 속에서 지나쳤을 법한 여정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다. 신화 속 영웅의 발자취가 머물렀을 이 바다에서 고대인들의 지혜가 담긴 와인 양조의 명맥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파시토는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와인이다. 포트나 소테른처럼 대표적인 디저트 와인으로 손꼽히지는 않지만, 그 품질과 완성도는 대단히 뛰어나며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에도 부담 없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영화 <오디세이>나 책 <오뒷세이아>를 감상하게 된다면, 곁에 파시토 한 잔을 곁들여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