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기간은 1년." 한 회사는 계약직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을 이 같이 분명하게 명시했다. 취업규칙에도 '계약기간 만료'를 당연퇴직 사유로 규정했다. 회사는 정규직 전환 여부를 가리기 위한 인사평가도 진행했다. 이후 해당 계약직 평가 결과가 기준 미달로 나타나자 계약기간 만료를 통보했다. 회사 입장에선 미리 정해둔 명확한 절차를 규정대로 밟은 상황.
하지만 이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해당 계약직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고 노동위는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계약이 갱신될 것이란 정당한 기대권이 형성돼 있었다는 판단이다. 또 회사가 내세운 인사평가 결과로는 계약 갱신을 거절할 합리적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 계약직을 원직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에 일했다면 받았어야 할 임금 상당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계약기간 끝났다" vs "계속 일할 기대 있어" 15일 노동실무 연구모임 흥미로운연구소에 따르면 계약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주들 사이에서 실무상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근로계약서·취업규칙, 정규직 전환 평가 절차 등을 통해 계약 갱신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도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정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다.
인사노무 실무 현장에선 "서류가 완벽한 사업장도 갱신기대권 사건에서 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앞선 사례에서 사용자 측 주장은 이렇다. 첫 1년 계약이었고 계약기간을 반복적으로 갱신 이력도 없었다. 근로계약서에는 자동종료 조항이, 취업규칙엔 당연퇴직 규정도 마련해놨다. 여기에 인사평가를 실시한 다음 결과에 따라 계약만료를 통보했다는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했다.
하지만 노동위는 회사가 비슷한 시기 같은 부서의 다른 계약직 근로자들 계약을 갱신한 데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쟁점은 근로계약서에 적힌 계약 만료일이 아니라 '요건을 충족하면 근로관계가 계속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됐는지 여부로 좁혀졌다.
노동위는 해당 계약직 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을 인정했다. 이어 사용자가 제시한 평가 결과가 계약 갱신을 거절할 합리적 이유에 해당하는지도 따졌다. 이 단계에서 회사 측 논리가 무너졌다. 평가 체계 자체는 있었지만 기준과 운영 방식이이 객관적이고 공정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또 계약만료 통보 무렵 근로조건을 둘러싼 이견이 겹치면서 평가의 객관성에 관한 의심을 털어내지 못해 발목이 잡혔다.단계별 법적 판단, 쟁점은 '계약 갱신 거절' 사유 노동위와 법원의 법적 판단은 크게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1단계는 갱신기대권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계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명시적 갱신 규정이 없어도 계약 체결 동기·경위, 갱신 요건·절차의 설정과 운용 실태, 수행 업무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당사자 간 계약 갱신에 관한 신뢰관계가 형성된 경우 갱신기대권을 인정하는 식이다. 반복적인 계약 갱신은 고려해야 할 요소일 뿐 필수 요건이 아니다. 첫 1년 계약을 맺은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평가를 거쳐 갱신·전환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갱신기대권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계약이 이어지거나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절차를 회사가 만들어 실제 운영했다면 근로자 입장에선 근로관계가 계속될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길 수 있어서다.
2단계는 갱신을 거절할 합리적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다.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 해도 사용자가 합리적 이유를 입증하면 정당한 계약 종료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 판단은 갱신거절 사유·절차가 사회통념상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면서 공정한지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이를 증명해야 할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
결국 단순히 평가를 했다는 사실보다 '평가가 공정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느냐'가 계약 갱신 거절의 정당성을 다투는 승부처인 셈이다. 대법원은 사업 목적·성격, 근로자 지위·담당 직무, 계약 체결 경위, 갱신 요건·절차의 설정과 운용 실태, 근로자 귀책사유 등을 종합해 판단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사용자가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자칫하면 부당해고…'기록'으로 리스크 대비해실무에선 세 단계에 따라 리스크를 대비해야 한다. 계약 체결 단계에선 갱신·전환 판단 기준과 절차를 문서로 구체화해 미리 고지해야 한다. 단순히 '평가 결과에 따라 판단한다'고 적는 데 그치지 말고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지 특정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제도 운용 단계에선 사전에 고지한 기준대로 평가해야 한다. 가능하면 복수 평가자가 참여해 점수의 근거가 되는 구체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평가 시기와 계약만료 판단 사이의 연계도 일관돼야 한다. 특히 사전에 기준을 알리지 않았거나 정성평가 위주인데 근거 기록조차 없는 경우, 평가자가 한 명뿐이고 교차검증이 없는 경우는 부당해고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계약 종료 단계에선 평가 결과와 계약 갱신 거절 사유를 알리고 소명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근로조건을 둘러싼 분쟁이나 이견이 있던 시기라면 종료 결정이 관련 사안과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필수다. 평가 기준에 따라 계약 갱신을 거절하게 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라는 취지다. 이 같은 단계별 절차의 핵심은 '기록'이다.
김효신 소나무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만료 통보를 기간 도과의 단순 확인으로 처리하는 관행이 분쟁을 만든다. 기준의 사전 설정, 평가 근거의 기록, 결과 통지와 소명 기회 등 해고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한 사업장만이 갱신거절의 합리성을 입증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