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중국 자본에 잇달아 팔리고 있다. 유럽 완성차 판매 부진과 중국 경쟁사의 공세로 경영난이 심해지면서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유럽연합(EU)의 추가 관세 부과와 유럽산 부품 의무 사용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부품사를 사들이고 있다. ◇ 中 ‘공급망 우회’ 먹잇감1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독일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유럽 자동차 부품 업체 130곳 이상에 투자했다. 초기에는 지리자동차의 볼보자동차 인수처럼 대형 거래가 중심이었지만 최근 10년간은 거래 규모가 1억유로(약 1633억원)에 못 미치는 소규모 인수와 지분 투자가 크게 늘었다.
이는 EU의 대응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시도로 분석된다. 기업정보 업체 사야리에 따르면 독일에서 중국계 자동차 자산 중 약 80%는 역외 중간회사나 독일식 이름을 쓰는 현지 지주회사를 한 단계 이상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소규모 거래가 여러 법인과 중간회사를 거쳐 이뤄지면 최종 지배 주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팔리 메스코 사야리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내 중국의 실질적인 소유 규모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자동차 업체의 유럽 현지 기업 인수는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EU의 통상 장벽이 높아지면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공공 조달과 공적 지원에 ‘메이드 인 EU’ 요건을 도입하는 산업가속법안도 제안했다. 한 대형 부품 업체 임원은 “중국 업체들이 공장 인수를 통해 생산기지 확보와 메이드 인 EU 지위 획득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 자금의 유럽 자동차산업 유입액은 늘고 있다. 로디엄그룹과 독일 메르카토르중국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중국의 EU 지역과 영국 자동차산업 투자액은 76억유로(약 12조원)로 전년보다 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의 전체 유럽 투자 중 자동차산업 비중은 45%였다. 자동차 투자액의 93%는 전기차 공급망에 집중됐다. ◇ 경영난 빠진 유럽 부품사2020년대 들어 심해지고 있는 유럽 자동차 부품사들의 경영난은 중국 자본 침투에 더욱 취약한 환경을 조성했다.
독일 최대 부품 업체 보쉬 매출은 2023년 916억유로에서 지난해 910억유로로 뒷걸음쳤다. 영업이익률은 2024년 3.5%에서 2025년 2.0%로 떨어졌다. 보쉬는 핵심 자동차 사업에서 약 2만2000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ZF 프리드리히스하펜 AG’ 매출은 2023년 466억유로에서 2025년 388억유로로 2년 만에 16.7% 줄었다. 콘티넨탈은 그룹을 해체하는 길을 택했다. 자동차 전장·제동 사업을 지난해 아우모비오로 분사했고 지난달에는 고무·플라스틱 사업 콘티테크를 미국 사모펀드(PEF) 론스타에 40억유로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유럽 자동차부품 산업은 전체적으로 쪼그라들고 있다. 유럽자동차부품협회에 따르면 유럽 부품 업체들이 2024년과 2025년 발표한 감원 규모는 10만4000명이었다. 독일 주요 부품 업체의 지난해 평균 이자 비용은 영업이익의 102%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부품사들은 약진하고 있다. 독일 컨설팅 업체 베릴스바이알릭스파트너스가 작년 실적을 토대로 선정한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사 중 중국 기업은 전년 13곳에서 15곳으로 늘어났다. 이들 기업 15곳의 매출은 지난해 21% 증가했다. 반면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사의 합산 매출은 1년 전보다 2.2% 감소했다. 경영난에 빠진 유럽 기업을 사들일 자금력과 고객 기반을 중국 기업이 확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략 컨설팅 업체 스트래티지앤드는 2019∼2025년 독일 업체의 이자 등 간접비 부담이 커졌지만 중국 업체는 간접비와 제조원가를 모두 낮춰 양국 부품사의 비용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업 전환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아 유럽 자동차 부품사들의 어려움은 지속될 전망이다. 일부 공장을 방위산업용으로 전환하고 있는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와 달리 부품사가 독자적으로 사업 전환에 나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방산은 자동차보다 생산량이 적고 국가별 계약에 의존하며 별도 인증, 시험, 군 규격 등을 통과해야 한다. 안정적인 장기 주문이 없이 중소 부품사가 회사 설비를 바꾸기 어렵다.
김주완/한명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