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이 글로벌 무대의 주인공으로 솟아올랐다. 지난해 한국 방산 수출액은 154억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톱10에 안착했다. K9 자주포, K2 전차, FA-50, 천궁-Ⅱ 등 한국산 무기체계는 압도적인 가성비와 무결점에 가까운 품질 그리고 폴란드 계약 당시 4개월 만에 초도 물량을 인도했던 독보적인 속도전(빠른 납기)을 앞세워 유럽과 중동, 아시아 시장을 거침없이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환호에 안주할 겨를이 없다. AI와 자율무기, 드론, 로봇, 사이버보안, 우주·위성 등 첨단기술이 전장의 판도를 뿌리째 흔들고 있어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단돈 50만원짜리 FPV(1인칭 시점) 드론이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첨단 전차를 무력화하고, 우크라이나 군이 이용한 델타(Delta) 같은 민간 소프트웨어 기반 전장 관리시스템이 승패를 갈라놓은 장면은 좋은 예다. 미래 방산의 승패는 이제 ‘얼마나 많이 찍어내는가’에서 ‘얼마나 빠르게 혁신하는가’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이제 K-방산은 제조 대기업 중심의 기존 성공 방정식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민간의 파괴적 첨단기술을 국방 분야에 즉각 이식하는 디펜스테크(Defense-Tech) 생태계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디펜스테크는 단순히 방산 스타트업 몇 개 키워보자는 수준의 정책이 아니다. AI·소프트웨어·드론·센서 등 민간이 쏟아내는 혁신 기술을 군의 실전 환경에서 곧바로 검증한 뒤 이를 무기체계에 즉각 이식하는 전면적인 혁신 체계의 전환을 뜻한다. 미국 국방혁신단(DIU)과 이스라엘 국방연구개발국(MAFAT)이 좋은 본보기다. 미국 DIU는 CSO(Commercial Solutions Opening)라는 유연한 시제품 계약 방식을 활용해 평균 2년 이상 걸리던 조달 절차를 단 몇 개월로 단축시키며 민간 기술을 즉시 조달로 연결한다. 설립 6년 만에 기업가치 100억달러를 돌파한 자율 방어 기업 안두릴(Anduril)이나 AI 자율비행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실드AI(Shield AI) 같은 글로벌 디펜스테크 공룡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스라엘 MAFAT 역시 창의적 첨단 군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탈피오트(Talpiot)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개발자와 군 운용자를 한 몸처럼 묶어 전장에서 기술을 시험한다. 실패를 지적하기보다 성실한 도전 그 자체를 자산으로 삼는 문화가 뿌리 깊다.
한국 역시 국방 AX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넘어야 할 제도적 벽은 여전히 높다. 정규 국방 획득체계는 소요 제기부터 실전 배치까지 평균 7~10년이 걸리는데 기술 수명이 1~2년에 불과한 AI·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배치되는 순간 이미 옛날 기술이 되어버린다. 여기에 감사 공포와 보안이라는 명목 아래 빗장을 걸어 잠근 국방 데이터,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R&D 문화가 민간의 혁신 DNA를 문밖에서 서성이게 만든다. 대기업과 달리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이 같은 조달 지연을 버티지 못하고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서 고사하곤 한다.
결국 속도·실증·데이터·투자 중심의 제도적 대수술이 필요하다. 군 실증을 통과한 기술은 패스트트랙을 통해 즉시 양산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성실한 실패는 적극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군사보안 역시 무조건적인 쇄국이 아닌 민감정보를 제거하거나 합성 데이터로 가공한 국방 데이터클린룸(Data Clean Room)이나 주요 군 부대에 실전 환경을 제공하는 국방 실증 샌드박스 형태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민간 자본과의 결합도 필수적이다. 정부 출연금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미국 VC들이 매년 디펜스테크에 수십억 달러의 벤처 자금을 쏟아붓듯 우리도 초기 위험을 정부가 나눠 안고 민간 VC의 참여를 유도하는 K-디펜스 모태펀드 조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제조·체계 종합 능력과 스타트업의 쾌속 혁신성, 대학·연구소의 원천기술, 그리고 군의 실전 경험을 하나의 톱니바퀴로 굴려야 한다.
K-방산의 첫 번째 도약이 세계적 무기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였다면, 두 번째 도약은 미래의 무기를 가장 빠르게 혁신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제조강국의 토대 위에 데이터와 소프트웨어의 혁신 DNA를 이식할 때 K-방산은 비로소 미래 전장을 설계하는 진정한 디펜스테크 강국으로 바로 설 수 있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