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발’로 불리는 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 판매량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내수 불황 장기화로 건설근로자와 소상공인의 상용차 구매가 확 쪼그라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상용차 판매량은 7만3042대로 전년 동기(8만4533대) 대비 13.6% 감소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38년 만의 최저치다. 상반기 상용차 판매량이 7만 대 수준으로 내려앉은 것은 1990년대 이후 처음이다. 2023년 상반기(12만4408대)와 비교하면 3년 만에 41.3% 급감했다.
차종별로는 건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덤프트럭, 레미콘트럭 등 특장차가 8160대에서 5751대로 29.5% 줄었다. 운수업과 관련이 큰 버스는 전년 동기 대비 20.1% 감소한 2만49대였다. 소상공인과 건설근로자가 주로 찾는 트럭 역시 4만7242대로 7.9% 위축됐다. 인기 모델인 현대자동차 1t 트럭 포터도 2만8379대에서 2만6850대로 5.4% 줄었다. 자영업 코너 몰리고, 건설은 침체…트럭 '내수 빙하기'
상용차 판매 38년만에 최저트럭과 버스 등 상용차는 경기 민감도가 유독 큰 시장으로 꼽힌다. 소상공인과 건설 근로자 등의 생계형 구매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상용차 판매량이 역대 최저치로 곤두박질친 배경에 자영업자의 생활고와 건설 경기 부진이라는 두 개의 악재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버스 판매가 20% 줄어든 것도 고물가와 여행 수요 감소에 직결된 운수업 침체와 관련이 깊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상용차 판매가 내수 경기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하반기 경기 흐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자영업 대출 역대 최대상용차는 소형(1t 미만)·중형(1~5t)·대형(5t 이상) 트럭과 버스, 특장차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감소세가 도드라진 건 트럭이다. 상반기 트럭 판매량은 5만1279대에서 4만7242대로 4037대 줄어 상용차 전체 감소분(1만1491대)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트럭 감소는 소상공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트럭 판매의 90% 이상이 현대자동차 포터와 기아 봉고 등 1t 트럭이기 때문이다. 두 차종 모두 소상공인이 생계형으로 쓰는 대표 차종이다. 포터는 2만8379대에서 2만6850대로 5.4%(1529대) 줄었고, 봉고 역시 8.2% 감소한 1만6415대 판매되는 데 그쳤다.
소형 트럭 수요 감소는 한계 상황에 다다른 자영업자의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95조5000억원으로 2012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체율도 작년 말 1.86%에서 올해 1분기 말 2.04%로 상승해 2015년 2분기 말(2.08%) 후 10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6월 시행한 ‘2026년 자영업자 경영환경 인식 조사’에선 응답자 500명 가운데 57.0%가 “지난해보다 경영 상황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골목 상권이 워낙 안 좋다 보니 소상공인이 차를 바꾸거나 새로 살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건설 침체에 특장차도 급감건설 경기 부진도 뗄 수 없는 요인이다. 주로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덤프트럭, 레미콘 믹서트럭 등 특장차 판매량은 올 상반기 5751대로 전년 동기 대비 29.5% 쪼그라들었다. 중형 화물차인 현대차 5t 트럭은 3451대에서 2007대로 41.8% 감소했고 2.5~3.5t급 트럭인 현대차 마이티는 3420대에서 2480대로 27.5% 줄었다.
건설지표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회사 시공 실적(건설기성)은 지난해 12월 16조2000억원으로 20개월 연속 감소했다. 올해 들어 5월 기준(11조9000억원) 전년 동월 대비 3.6% 증가했지만 지속된 감소세에 따른 기저효과라는 평가가 많다. 올해 5월 건설업 취업자는 192만 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2% 줄었다. 건설업계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건설경기실사지수(CBSI)도 74.5를 기록해 기준치(100)를 크게 밑돌았다.
업계에서는 상용차 판매 급감을 단순한 자동차산업 내 악재가 아니라 내수 경기 전체의 침체 징후로 본다. 상용차업계 관계자는 “승용차가 가계의 소비심리를 반영한다면 상용차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투자, 생산활동과 직결되는 선행지표 성격이 강하다”며 “물동량 자체가 줄다 보니 상용차 판매도 부진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양길성/정상원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