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루이비통 살 돈으로 이거 산다"…中 부자들 돌변

입력 2026-08-19 13:00
수정 2026-08-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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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토종 명품 브랜드들이 럭셔리 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 둔화로 중국의 고급 소비가 위축되는 와중에 라오푸골드·아이시클·송몬트 등은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명품 로고보다 품질과 장인정신, 중국적 미학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데다 빠르게 입지를 구축한 중국 제조·공급망이 이를 뒷받침하면서다. 중국 토종 브랜드가 럭셔리 시장의 저가 대체재를 넘어서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의 상징' 바뀐 명품 거리 최근 중국 상하이의 대표적인 고급 쇼핑거리 화이하이중루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까르띠에, 티파니앤코, 구찌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일부 매장을 정리하는 새 가방 브랜드 송몬트와 신발 브랜드 파네, 향수 브랜드 관샤 같은 중국 브랜드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때 해외 명품 로고가 부의 상징이었다면 최근엔 중국 고유의 문화와 디자인을 앞세운 토종 브랜드가 고급 쇼핑몰의 핵심 매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대표 주자는 중국 전통 귀금속 브랜드 라오푸골드다. 라오푸골드는 순금에 중국 전통 문양과 수공예 기술을 결합해 금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한다.



상하이의 한 소비자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순금 10g짜리 조롱박 모양 목걸이에 약 2만8000위안(약 586만원)을 지불했다고 전했다. 당시 금값을 감안하면 금 자체 가치의 두 배를 웃도는 가격이다. 하지만 이 소비자는 "루이비통 가방을 살 때 천 원가가 얼마인지 묻지 않는 것과 같다"며 디자인과 장인정신에 돈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실적도 이같은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라오푸골드는 지난해 말 기준 등록 회원이 61만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80% 이상이 루이비통·까르띠에 등 기존 명품 브랜드 고객과 겹친 것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매출은 약 200억위안으로 전년 동기보다 60~65%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일본과 한국 쇼핑몰 진출도 협의 중이다.

중국 토종 명품 브랜의 약진은 경기 호황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도 눈에 띈다. 중국의 올 상반기 사회소비품 소매총액 증가율은 1.3%에 그쳤다. 중국 후룬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고급 소비시장 규모도 1조5600억위안으로 5% 감소했다. 조사 대상 중국 고액자산가의 절반 이상은 올해 일상적인 명품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중국 토종 브랜드가 성장하고 있는 건 소비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어서다. 과거 중국의 명품 소비는 로고와 브랜드 역사, 타인에게 보여주는 지위에 초점이 맞춰졌다.

최근에는 제품 품질과 장인정신, 디자인, 혁신성과 가격 대비 가치가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천연 소재와 편안함을 강조하는 중국 고급 패션 브랜드 아이시클은 이런 '콰이어트 럭셔리'(조용한 명품) 흐름을 타고 최근 중국에서 두 자릿수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했다.
제조·공급망이 만든 프리미엄 이에 비해 글로벌 명품 기업들은 중국 소비 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루이비통·디올 등을 보유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 줄었고 이익도 4% 감소했다. 구찌·발렌시아가·보테가베네타 등을 거느린 케링은 매출이 3% 감소했고 순이익은 60% 급감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희소성과 상징성은 약해지는 반면 중국 토종 브랜드에 대한 문화적 친밀감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제조 경쟁력도 토종 명품 브랜드의 부상을 이끌고 있다. SCMP는 "의류·가죽·귀금속·화장품 등 소비재 공급망이 고도화하면서 중국 토종 브랜드들도 품질과 서비스에서 글로벌 업체와 경쟁할 기반을 갖췄다"며 "여기에 중국 역사와 전통 문양, 동양적 미학을 제품에 녹여 해외 브랜드가 따라 하기 어려운 문화적 프리미엄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의 전체 명품 소비 가운데 65%가 중국 본토에서 이뤄졌다. 이를 두고 중국 럭셔리 브랜드가 도전자에서 시장을 형성하는 주체로 진화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고급 소비재 연구기관 야오커연구원의 저우팅은 "2035년 중국 시장에서 토종 럭셔리 브랜드의 매출 점유율이 글로벌 브랜드와 대등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들 업체들이 중국 내 성공을 글로벌 브랜드 파워로 연결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제조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은 빠르게 따라잡았지만 수십~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유럽 명품의 역사와 세계적 인지도는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라오푸골드와 아이시클 등이 한국·일본·유럽에서 중국에서와 같은 프리미엄을 인정받을지가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