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ATM' 된 삼전닉스?…반도체 저승사자도 "이젠 살 때" [빈난새의 빈틈없이마켓]

입력 2026-08-08 12:01
수정 2026-08-08 13:37

지난 3월 이란 전쟁 발발 직후, '전통 안전자산' 금(金)은 오히려 일주일 만에 9.6% 급락했습니다. 갑자기 금의 투자 매력이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전쟁과 유가 급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폭발하고 유동성 스트레스가 커지자, 현금 마련이 급해진 헤지펀드와 일부 투자자들이 가장 수익률이 좋고 현금화가 쉬운 금부터 팔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금은 안전자산보다 월가의 ‘현금인출기(ATM)’에 가까웠습니다.

최근 메모리주, 특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약세에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7월 말 대규모 포지션 청산 이후 미국 AI 하드웨어·반도체주는 반등 추세로 돌아선 반면 한국 메모리주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것을 업황 둔화에 대한 우려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엔비디아 차세대 가속기의 HBM(광대역폭메모리) 탑재량 축소, SK하이닉스의 저가 장기공급계약(LTA) 루머 같은 악재는 한국 메모리주에 비대칭적인 타격을 줬습니다.

월가에선 한국 메모리가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AI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파는 ‘펀딩숏(funding short)’의 대상이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AI 롱' 지키려 '메모리 숏'정황은 분명합니다. JP모건에 따르면 7월의 기술주 급락으로 글로벌 헤지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의 약 3%포인트를 반납했습니다. 특히 아시아 주식형 펀드는 7월 평균 -9.4%, 퀀트 주식형은 -5% 손실을 냈습니다. AI 전문 헤지펀드의 아이콘이었던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대규모 손실과 마진콜을 버티지 못하고 시타델에 주식 포트폴리오 대부분을 넘긴 것은 레버리지 청산의 정점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도 헤지펀드의 차입과 레버리지는 낮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JP모건 분석을 보면 8월 1일 기준 헤지펀드 차입 규모는 최근 5년래 사상 최대 수준에 육박했고, 퀀트형 펀드의 추정 레버리지 비율은 450%에 달했습니다. 기술주 포지션 역시 장기 평균보다 여전히 높았습니다. 다시 말해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AI 기술주를 포기한 게 아니라, 익스포저를 상당 부분 유지한 채 손실과 위험한도를 관리해야 하는 상태가 됐습니다.

모든 AI 주식을 팔고 떠난 게 아니라면 남은 롱 포지션을 지키기 위해 반대편에서 위험을 줄여야 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가장 많이 올랐고, 유동성이 풍부하고, AI CAPEX(자본지출) 사이클과 상관관계도 높은 종목은 이때 좋은 헤지 수단이 됩니다.

업황이 나빠서 매도하는 것이 아닌, 다른 AI 주식을 사거나 들고 가기 위해 메모리를 매도하는 펀딩숏 거래입니다. 쉽게 말해 7월 기술주에서 돈을 잃은 투자자들이 위험한도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쉽게 팔 수 있는 메모리를 ATM처럼 쓰면서 가격 왜곡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메모리,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TM으로 선택될 이유는 많았습니다. 두 종목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안팎을 차지하므로 두 개만 팔아도 한국 및 신흥국 시장, AI CAPEX와 반도체 테마에 대한 노출을 한꺼번에 줄일 수 있습니다.

또 과도한 변동성은 글로벌 헤지펀드뿐 아니라 롱온리 펀드와 기관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게 만들었습니다. BNP파리바의 윌리엄 브래튼 아시아 주식리서치 대표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한국 시장의 변동성이 너무 커서 아무리 이익 전망이 좋아도 기관투자자들은 지금 당장은 매수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적과 펀더멘털이 아무리 좋아도 주가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메커니즘입니다.

실제 씨티에 따르면 7월 말 한국 증시에서는 단순히 기존 롱 포지션이 청산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신규 숏' 포지션이 시작됐습니다. 7월 초중순까지는 많이 오른 반도체 롱의 이익실현과 디레버리징이 주가 하락의 가장 큰 이유였다면, 7월 말 이후는 롱 청산 뿐 아니라 새로운 숏 포지션이 구축됐다는 것입니다.


씨티의 데이빗 츄 애널리스트는 한국 주식의 숏 포지셔닝이 3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올라왔다면서 "AI 투자 심리가 안정되면 숏커버 랠리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숏에 치우친 상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7월 31일 한국 메모리의 급반등 이후 약세는 신규 숏과 숏커버 랠리가 동시에 발생하는 '고변동성 구간'의 흔적인 셈입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도 물론 변동성을 키운 요인입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규제가 시작된 이후에는 코스피 전체 거래에서 이들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지만, 매일 2배 수익률을 맞추기 위한 기계적 리밸런싱이 약세장에서 하락을 더 증폭시키는 구조 자체는 남아 있습니다.

지난 4일 공개된 한 연구 초안에선 이런 리밸런싱 구조를 이용한 선행매매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연환산 변동성을 47%포인트 높였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메모리 약세론자도 "조정 막바지"정작 메모리 펀더멘털에는 여전히 뚜렷한 피크아웃 신호가 없습니다.

최근 엔비디아가 루빈 울트라의 HBM 탑재 사양을 낮췄다는 해묵은 뉴스가 다시 주가를 흔들었지만, 이는 HBM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이 얼마나 가파른지 보여주는 소식에 불과했습니다. 씨티는 "브로드컴, 구글 등 고객사들은 2028년 물량까지 문의하고 있다"면서 "루빈 울트라 세대에서 AI 시스템당 HBM 탑재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GPU 한 대에 들어가는 HBM이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것과 전체 HBM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SK하이닉스는 '경쟁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엔비디아와 장기계약을 체결했다'는 루머를 이례적으로 공식 부인했습니다. 실제 가격 협상 상황은 오히려 반대를 가리킵니다. 트렌드포스는 루빈 울트라와 AI 맞춤형반도체(ASIC)가 HBM 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면서 “공급업체들이 2027년 HBM 계약 협상에서 더 큰 가격 경쟁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부 고객은 100%에 가까운 가격 인상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GPU·ASIC 출하량 증가와 가격 상승이 탑재량 감소를 넘어설 경우 HBM 시장은 계속 커집니다. 골드만삭스는 HBM 시장 규모가 올해 560억달러에서 2027년 1160억달러, 2028년 1680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7월 초 메모리주의 단기 조정 가능성을 경고했던 모건스탠리의 숀 킴 아시아 테크 리서치 총괄도 7일(미국 동부시간) 이제 "전술적으로 매력적인 진입 시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주기적으로 메모리 위기론을 제기해 '반도체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2024년 9월에도 D램·HBM 공급 과잉 우려가 있다며 SK하이닉스 목표가를 반토막(26만원→12만원)낸 보고서로 파장을 일으켰던 주인공입니다.


숀 킴은 최근 조정을 "AI 슈퍼사이클 안의 작은 파동(minor ripple)"이라면서 삼성전자(38만1000원)와 SK하이닉스(260만원) 목표주가를 유지했습니다. 포지셔닝 쏠림이 완화되고 극단적으로 높았던 시장 기대치가 정상화되면서, 위험했던 구간이 거의 끝났다는 것입니다. 현재 메모리주는 향후 12개월 주가수익비율(PER)이 3배에 불과해 장기 성장 프리미엄을 사실상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JP모건도 "AI 상승 사이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반도체의 최근 조정에도 불구하고 향후 6~12개월 내 본격적인 하락 사이클을 예고할 펀더멘털 지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진단했습니다. 2023년 2분기 9%였던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오라클의 퍼블릭 클라우드 매출 증가율이 올 1분기 36%, 2분기 43%까지 가속하고 있는 것이 가장 강한 근거입니다. 엄청난 수요를 따라가기 위한 CAPEX도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오르는데...삼전·하닉 반등하려면수급 충격이 일단락되면서 미국 AI 반도체와 하드웨어주는 견고한 펀더멘털을 반영한 반등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5거래일 간 마이크론은 12%, 루멘텀은 30%, 블룸에너지는 11% 상승했습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11.4%, 삼성전자는 5% 하락했습니다. 한국 메모리가 이 괴리를 좁히려면 투심과 수급을 회복시킬 몇 가지 카드가 필요합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주주환원입니다. 잉여현금(FCF)의 100%를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방향을 제시한 마이크론에 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재 주주환원 정책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습니다.

올해 말 두 회사의 순현금은 합산 2630억달러에 이를 전망으로, 엔비디아(1020억달러)의 두 배가 넘습니다. 그런데 두 회사의 현재 주주환원 정책은 FCF의 약 50% 수준입니다. SK하이닉스 주주인 야누스헨더슨의 리처드 클로드 매니저는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대차대조표”라고 지적했습니다.

모건스탠리와 JP모건, 골드만삭스, 씨티 등 월가 투자은행들도 SK하이닉스의 상승 촉매가 될 1번 재료로 주주환원을 명시했습니다. JP모건은 최근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낮추면서 “투자심리를 회복하려면 자본배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필수적”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외 투자 수요와 법인세, 성과급, 지배구조 문제 등 보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재평가를 받으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문제입니다.

다행히 '연내' 추가 주주환원책을 발표하겠다던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 중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핵심 관건은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가 시장 기대를 얼마나 넘어서는지입니다.

메모리 수요 파괴 우려를 확실히 걷어낼 숫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27년 HBM 장기공급계약 가격의 윤곽이 드러나고, GPU 탑재량 감소를 전체 출하량과 평균판매단가 상승이 충분히 상쇄한다는 것이 숫자로 드러나야 합니다.

수요처 확장이 꾸준히 확인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AI 투자는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만 하는 게 아닙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한국 등 각국 정부와 개별 기업들은 '소버린 AI'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기존 CAPEX 컨센서스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AI 데이터센터가 실제 AI 칩·전력 계약을 체결하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CAPEX 사이클 피크아웃 우려도 완화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 사이클 더 가지만, 신고가 쉽지 않을 것"지난 3월 이후 오랜 조정을 겪은 금은 최근 반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금리 인상 우려가 걷히고 있는 점도 결정적입니다. 그러나 당시 매도됐던 이유가 좋은 자산이고, 많이 올랐고, 현금화하기 쉬웠기 때문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 이제 다시 반등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메모리도 비슷하다면, 최근의 주가 하락을 곧바로 사이클 종료로 읽는 것은 성급합니다. 펀더멘털보다 수급이 주도한 매도라면 가격의 추세도 다시 수급과 신뢰가 회복될 때 돌아설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그 전환이 머지 않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 여전히 메모리에만 '올인'하는 투자자들이 있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추세 전환이 곧 지난 2년과 같은 폭발적 급등과 신고가 직행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메모리 이익 상승 속도에 대한 전망이 정상화되고, 극단적이었던 강세 내러티브가 깨지면서 향후 주가 상승의 경로는 더 완만하고 울퉁불퉁해질 수 있습니다.

JP모건은 "수급은 여전히 타이트하지만, 메모리 비용 상승에 대응하려는 고객사들의 움직임은 밸류에이션의 상단을 제약할 수 있다"며 메모리 주식에 대해 "앞으로 6개월간 강한 반등을 예상하지만, 2026년 5월 고점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AI 투자 사이클이 길어지고 더 많은 병목이 드러날수록 투자자의 시야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참고 <메모리 부족은 시작일 뿐…AI 시대 돈이 향하는 곳은>) 반도체 장비, 기판, 전력, 광통신 등 AI의 확산을 제약하는 요소는 메모리만 있지 않습니다.

JP모건은 이번 조정 이후 반도체 장비 분야를 가장 선호한다고 했고, 다음으로 첨단 패키징과 IC기판, 그리고 인터커넥트에 주목했습니다. 또 18~24개월 뒤에는 병목이 다시 데이터센터·네오클라우드와 전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