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차 직장인 이모씨(36)는 지난 5월 5000만원의 정기예금을 깨서 SK하이닉스와 한화오션 등 주식에 투자했다. 이씨는 “‘롤러코스터 장세’ 속에 하루에도 소형 중고차값에 해당하는 수백만원이 오르락내리락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현재 수익률은 -28%. 매수를 눈여겨보던 서울 구로동의 아파트는 최근 석 달 새 9000만원이 올라 투자 수익으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은 더 멀어졌다.
증시 불안과 부동산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에 우울감과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미보유자는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혔고,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주와 유주택자도 가격 급변동과 세금 부담 등으로 불안감이 가득하다.◇주식 우울증에 횡령·살인미수까지
7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이 증권 계좌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109만6509명으로, 이 가운데 43.29%가 손실을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보유 투자자는 49만7037명이며 손실 투자자 비율은 60.21%에 달했다. 평균 매입 단가는 삼성전자가 20만4033원, SK하이닉스가 169만3536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돈암동에 사는 유모씨(60)는 올해 초 정년퇴직 후 반도체·2차전지·바이오주에 2억원을 투자했다가 500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삼전닉스 반도체 종목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유씨는 “은퇴 후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매일 증시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 역사상 15차례인 서킷 브레이커가 올해에만 9차례 발동됐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 손실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주식 우울증’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장이 좋았던 6월까지는 주식 투자 손실로 인한 우울감, 공황 증상 등 환자가 하루 평균 5명 수준이었는데 7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11명 정도로 늘었다”고 했다.
투자 손실을 만회하려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경북대에선 한 동아리 회장이 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동아리 회비 677만원을 유용해 개인 주식 투자에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부산남부경찰서는 투자 유튜버의 조언을 믿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뒤 앙심을 품고 유튜버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미수)로 20대 남성 B씨를 지난달 27일 구속 송치했다.◇1년 새 2억원 뛴 서울 아파트다락같이 오르는 집값도 스트레스를 더하는 요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9490만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7월(14억572만원)과 비교하면 1년 새 약 2억원 뛰었다.
이를 지켜보는 무주택자의 속은 타들어간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내 집을 마련하고 싶어도 대출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작년 정부의 ‘10·15 대책’ 이후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최대 6억원(15억원 이하 주택 기준)으로 묶였다.
직장인 조모씨(37)는 “작년 초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를 9억원에 사려다가 계약 당일 집주인이 갑자기 가격을 5000만원 올려 매수를 접었다”며 “현재 이 아파트 가격이 13억원대 후반으로 급등했는데, 그때 어떻게든 5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말했다. 느긋하게 기다리며 기회를 보려 해도 전세시장마저 불안하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서만 6.53% 올랐다.
내 집 장만에 성공했더라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작년 8월 상암동의 구축 아파트를 매수한 결혼 5년차 이모씨는 유주택자가 된 이후에도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계속 느낀다. 이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에 맞춰 잠실로 이사간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잠실 집값은 30억원에 달하는데 현재 아파트값(14억원)과 대출 가능액(2억원)을 제외해도 14억원이 모자라 어떻게 모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장위동에 자가 신혼집을 마련한 김모씨(41)는 매달 280만원에 달하는 원금과 이자 상환액 때문에 삶의 질이 더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향후 변동금리로 바뀌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진영기/이인혁/우연수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