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을 입은 문학 [권지예의 이심전심]

입력 2026-08-07 17:41
수정 2026-08-08 00:05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문장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문장들을 소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풍경을 봤다.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문장을 입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1층에서 열린 ‘글입다(Wearingeul)’ 팝업스토어에 우연히 가게 됐다. 이름 그대로 문학을 입힌 문구와 생활용품을 선보이는 공간이었다. 유리펜과 북퍼퓸, 형형색색의 잉크와 북마크, 문진과 편지지…. 놀랍게도 인기 상품은 이미 ‘솔드아웃’ 표시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상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장이었다. 이름표처럼 붙어 있는 작품 제목과 시구나 소설 문장을 따라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는 작품을 만나면 반가웠고, 모르는 작품은 문장을 새기듯 음미하며 읽었다. 나는 결국 유리펜을 사고 남보랏빛 ‘오페라의 유령’ 잉크와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이름의 갈색 잉크를 집어 들었다. 앞으로는 유리펜에 이 잉크를 찍어 독자들의 책에 사인을 하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봤다.

사실 나는 실용적인 사람이다. 서점에서도 책만 사고 문구 코너는 대개 지나쳤다. 그래서 둘러봐도 책은 없고, 문장을 입힌 굿즈를 파는 이런 상점이 좀 당황스러웠다. 책은 안 읽고 문장만 소비하는 시대가 된 걸까. 문학도 이제 껍데기만 남은 걸까.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런 서운함이 먼저 들었다. 예전에는 책값이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밤새워 읽었다. 한 권의 책은 오래도록 마음을 흔들었고, 그 감동은 기억 속에 남았다. 그런데 이제는 작품의 분위기와 이름을 딴 북퍼퓸이 나오고 잉크가 팔린다. 문학도 이제 향기가 되고 색이 되고 손끝의 감촉이 돼 독자를 만나는 걸까.

하지만 매장을 한 바퀴 더 둘러본 뒤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처음 보는 작품 제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젊은이들. 마음에 드는 문장을 휴대폰에 담는 사람들. 상품에 적힌 책 제목을 검색하는 사람. 시필대에 앉아 천천히 필사를 하는 사람. 오래전에 읽은 작품의 한 구절을 발견하고 반갑게 웃는 연인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굿즈를 사러 왔다가 문학을 만나는 사람도 있겠구나.

예전에는 책이 독자를 기다렸다.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조용히 누군가 펼쳐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는 책이 먼저 독자를 찾아간다. 문학작품에 나오는 글을 입은 향기가 되고, 잉크가 되고, 만년필과 유리펜이 돼서.

처음에는 문학이 껍데기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새 옷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옷의 매력에 마음이 끌린 누군가가 결국 한 권의 책을 만나 펼칠 수도 있다는 거다. 세상이 변하면서 독자의 취향도, 책을 만나는 방식도 달라졌다. 향기를 맡고, 만년필로 문장을 따라 쓰고, 작품의 이름을 딴 잉크를 고르다가 한 권의 책을 펼치게 된다면 그것도 문학이 독자를 만나는 또 하나의 길일 것이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굿즈가 아니다. 문학은 시대마다 다른 옷을 입어왔지만, 그 안에 담긴 문장의 힘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날 내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유리펜과 잉크만이 아니었다. 오래 잊고 있던 문장을 다시 펼치고 싶은 마음도 함께 들고 왔다. 유리펜에 아름다운 잉크를 찍어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을 써보다가 빨리 시집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물건보다 한 줄의 좋은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