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릴 적 흙장난하며 부르던 이 노래가 요즘 많은 서울 구축 아파트 거주자에게 간절한 염원입니다. 서울 아파트 3채 중 1채는 이미 서른 살을 넘겼고, 신축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됐습니다. '이슬기의 새집다오'는 복잡한 재건축·재개발의 실타래를 풀고, 우리가 살고 싶은 '내일의 집'을 탐구합니다. 여러분의 '새집' 꿈이 선명해질 수 있도록 투명하고 쉽게 쓰겠습니다. [편집자주]
'서울의 맨해튼', '강남을 넘어설 유일한 대한민국 주거지의 최종 후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수식하는 화려한 문장들입니다. 여의도에 들어서면 유리창이 번쩍이는 대형 증권사와 금융사 마천루들이 하늘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로 옆에는 50년이 넘어 주차난에 허덕이는 낡은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 금융 허브의 화려함과 1960~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의 노후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기묘한 불균형이 깨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여의도 일대 아파트 단지들이 일제히 재건축 궤도에 오르며 최고 79층에 달하는 초고층 스카이라인으로 탈바꿈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현재 시세 반포 한강 변의 절반…'구축 밭' 여의도의 상대적 가성비
현재 여의도 아파트 최고 시세는 한강변에 접한 핵심 단지들을 중심으로 3.3㎡당 1억원 안팎에 형성돼 있습니다. '한강뷰'를 전면에 품은 서울, 목화, 삼부, 대교, 한양, 시범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뒤쪽으로 늘어선 수정, 한양, 삼익, 은하 등은 3.3㎡당 6000만~7000만원 수준입니다.
재건축을 마치고 화려한 신축 단지로 변신한 서초구 반포동 한강변 아파트들의 3.3㎡당 가격이 1억5000만~2억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입지적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아직 낮은 수준으로 보입니다. 여의도 아파트 단지들이 대형 평형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급지일수록 대형 평형의 평당 단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부동산 시장의 공식을 떠올리면 '상대적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갖춘 구간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여의도가 그동안 강남권에 비해 시세 상승 폭이 둔화한 가장 큰 이유는 말 그대로 이곳이 '구축 밭'이기 때문입니다. 여의도 주요 아파트 대부분은 1970년대에 조성된 대한민국 1세대 아파트입니다. 1970년대에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이촌동과 함께 서울 최고 부촌 아파트 단지로 명성을 날렸으나, 최근 강남권 아파트들이 속속 재건축을 마치고 초호화 신축으로 변하는 동안 여의도는 뒤처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과 파격적인 용도지역 상향에 힘입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습니다. 여의도 일대에서는 최소 15개 정비사업 구역이 동시다발적으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하나가 모두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상징성도 높습니다.
'여의도 1호 관리처분 단지' 타이틀을 거머쥔 여의도 대교아파트의 경우 여의도 재건축 속도전의 선두 주자입니다. 조합설립 인가 후 불과 2년4개월 만에 사업의 9부 능선이라고 불리는 관리처분인가계획을 받아냈습니다. 구글 신사옥을 설계한 글로벌 설계사 헤더윅 스튜디오와 손을 잡고 최고 49층, 912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상업지역에 위치해 여의도 내에서도 독보적인 정비 사업 속도를 보이는 여의도 한양아파트 역시 주목받는 핵심 사업지입니다.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안고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 '디에이치(THE H)'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최고 57층 높이의 초고층 금융가 복합 주거 단지로 대변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비싸도 최고로 지어라"…평당 1600만원 뚫은 공사비최고 입지에 있는 단지들인 만큼 공사비는 '헉'소리가 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땅 중 하나인 만큼 '공사비가 많이 들더라도 최고급 명품 아파트로 짓겠다'는 조합원들의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습니다.
시공사 선정 단계에 있는 목화아파트는 3.3㎡당 공사비 1370만원을 제시하며 종전 서울 정비사업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뒤이어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낸 여의도 광장아파트(38-1구역) 3.3㎡당 공사비 1590만원이라는 전무후무한 금액을 내걸었습니다. 압구정과 성수 등 핵심 재건축 사업장이 1100만~1200만원대에 책정됐는데, 이보다 높습니다. 역대 책정된 공사비 중 최고가입니다.
초고층 건물의 특성상 하중·내진 설비와 소방 규제 비용이 급증하는 데다 스카이브릿지, 수영장, 호텔식 컨시어지 등 초호화 커뮤니티 시설과 해외 명품 설계를 대거 적용하며 공사비 상단이 크게 열렸습니다.
건설사들은 여의도 재건축 수주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막대한 홍보비를 들이는 수주전 출혈 경쟁은 이뤄지지 않지만, 유력 건설사들이 소규모 단지에도 응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여의도는 상징성이 있는 곳인 만큼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꼭 하나는 수주해야 하는 랜드마크 사업장"이라며 "공사비 절대 금액이 높고, 조합원들도 협조적인 데다, 입지적 프리미엄이 확실해 대형 시공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시장"이라고 말했습니다.서서히 닫혀가는 기회의 땅…거래 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주의
장밋빛 미래를 품고 있지만, 매수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곳은 아닙니다. 광장, 시범, 한양, 대교, 목화, 공작, 진주 등 주요 재건축 아파트들 대부분이 이미 조합설립인가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여의도는 투기과열지구이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재건축 단지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이후 원칙적으로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됩니다. 1가구 1주택으로 10년 보유·5년 거주한 조합원의 매물만이 법적 예외 요건을 갖춰 거래가 가능해, 시장에 나올 매물 자체가 극히 제한적입니다.
대형 평형 위주로 조합원이 구성돼 있고, 여의도 내에 단지 자체가 희소하기 때문에 일반 분양으로 나올 물량 자체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 청약자들에게는 아쉬운 대목입니다.
현재 여의도 내에서 '조합설립인가' 전으로 그나마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한 곳은 삼부(조합설립 준비 중), 수정(추진위 승인), 미성(추진위 승인), 은하·삼익(정비구역 지정) 정도입니다
여의도동 소재 한 공인중개 대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로 2년 실거주 의무가 있고, 매수가 가능한 조합원 양도 매물은 프리미엄이 대폭 붙어 현금 유동성이 넉넉한 자산가가 아니면 진입이 쉽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한강변 초고층이라는 희소성과 금융 허브 직주근접 가치가 입증돼 매물 문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