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사상 처음 1000만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한국을 찾는 일본인은 그 절반인 400만명에도 크게 못 미칠 전망이다. 가까운 이웃 국가 사이의 관광 교류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배경에는 일본인들이 여행 자체를 꺼리게된 구조적 변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여권 발급 수수료를 1만엔 아래로 대폭 낮췄다. 일본인의 해외여행을 되살리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수수료 인하만으로 일본인의 발길을 해외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의 ‘여행 이탈’이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으로 생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누적된 장기 추세이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 여권 통계를 토대로 산출한 2025년 일본인의 여권 보유율은 18.5%에 그쳤다. 일본인 6명 가운데 5명가량이 유효한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영국 약 60%, 미국 약 50%, 한국 약 42%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일본인의 해외 출국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관광시장이 빠르게 회복하는 흐름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해외여행 감소세는 최근 엔화 약세가 본격화하기 훨씬 전부터 약 30년간 이어졌다.
국내여행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국내 숙박여행에 참여하고 싶다는 일본인의 비율은 동일본대지진 직후인 2011년도 81.9%에서 2024년도 53.1%로 떨어졌다. 해외 대신 국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의 우선순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은 한·일 관광객 격차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인에게 일본은 비행시간이 짧고 항공편이 많으며 엔화 약세로 비용 부담도 낮은 대표적인 단거리 해외여행지다. 도쿄와 오사카뿐 아니라 후쿠오카, 삿포로, 오키나와와 지방 소도시까지 여행지가 다양해 반복 방문 수요도 강하다.
한국에서는 금요일 저녁이나 짧은 연휴를 활용해 2박3일 또는 3박4일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방식이 보편화했다. 국내 숙박비와 교통비가 오르면서 “이 돈이면 일본에 간다”는 인식도 퍼졌다. 저비용항공사의 노선 확대와 지역 공항의 일본 직항편도 수요를 뒷받침한다.
반면 일본인에게 한국은 가까운 여행지지만 환율 측면에서 과거만큼 저렴하지 않다. 엔화 약세로 한국의 호텔과 외식, 쇼핑 비용이 일본인의 체감 기준으로 비싸졌다. 서울 중심의 음식·쇼핑·미용·K팝 관광에 수요가 집중돼 일본 관광처럼 계절과 지역을 바꿔 여러 차례 방문할 동기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관광객 격차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일본인의 해외여행 수요 자체가 위축됐다는 데 있다. 일본인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 대부분의 해외 목적지 방문에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장시간 노동과 휴가 사용 문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유급휴가는 보장돼 있지만 동료에게 업무 부담을 준다는 의식 때문에 장기간 연속 휴가를 사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직장인이 많다.
휴가도 오봉과 연말연시 등 특정 시기에 집중된다. 국민 대부분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숙박비와 교통비가 급등하고 관광지는 혼잡해진다. 유럽처럼 1~2주 동안 휴가를 사용해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려운 구조다.
다만 장시간 노동과 휴가 사용에 대한 부담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여행이 대표적인 여가 소비로 자리 잡았다. 맛집과 쇼핑, 사진, 사회관계망서비스 콘텐츠가 여행과 결합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여행 경험이 다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낸다.
한국에서는 휴가가 짧더라도 여행을 포기하기보다 일정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일본에서는 휴가 제약에 여행 자체의 사회적 우선순위 하락까지 겹쳤다는 점이 차이다.
집 근처 쇼핑과 외식, 게임, 애니메이션, 온라인 콘텐츠 등 세분화한 취미도 여행을 대체하고 있다. 일본은 치안과 교통, 음식과 문화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일상생활권을 벗어나지 않아도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낯선 곳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외국어와 낯선 환경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높다. 여권을 만들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며 현지 교통과 결제 방식을 알아보는 과정을 번거롭게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해외여행 감소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부모 세대의 경험이 자녀 세대로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 악순환도 나타난다.
경제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장기간의 임금 정체와 사회보험료 상승, 고용과 노후 불안으로 일본 가계의 절약 성향이 강해졌다. 최근에는 엔화 약세와 항공료·숙박비 상승까지 겹치면서 해외여행의 문턱이 더욱 높아졌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