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햇볕이 남긴 청구서

입력 2026-08-06 18:10
수정 2026-08-07 00:08
오랫동안 나는 정수리의 거친 피부를 호주의 햇볕 아래서 자란 흔적쯤으로 여겼다. 내 또래 호주인들은 어린 시절 대부분을 야외에서 보냈다. 당시에는 자외선의 위험성과 자외선 차단제, 피부암의 연관성이 막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다. 우리 부모 세대는 그런 사실을 거의 알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어린 시절 마음껏 즐긴 햇볕이 뒤늦게 청구서를 내밀었다.

한국에 살면서 문제의 부위를 여러 차례 치료받았다. 의사들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병변이라고 했고, 치료받고 나면 한동안은 병변이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전암 단계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편평세포암이었다. 결국 모스 수술로 암을 제거했다. 생각보다 큰 수술이었다. 다행히 치료는 잘 됐지만,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었다.

이후 호주에 돌아가 피부과 의사에게 치료 결과를 보여주자, 그는 자신이었다면 처음부터 전암성 각화증 단계에서 병변을 제거했을 것이며, 설령 암으로 진행됐더라도 수술은 다른 방식으로 했을 거라고 말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한국은 우수한 의료 수준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이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하지만 나라마다 오랜 경험을 통해 특별히 강해진 분야가 있다. 호주는 피부암이 바로 그런 분야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호주가 피부암 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강렬한 햇볕 아래서 야외 활동을 즐기는 데다, 피부가 희고 햇볕에 쉽게 타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호주의 피부과 의사들은 의심스러운 병변을 조기에 발견하고, 악성으로 진행하기 전에 치료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검진 방식이다. 호주에서 피부 검진을 받으면 의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본다. 환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병변까지 찾아내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에서는 대체로 환자가 이상을 발견한 특정 부위를 중심으로 진료하고, 전신 피부 검진은 비교적 흔하지 않다.

평소 질병의 예방과 조기 발견을 중시하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하다. 두 나라에서 흔히 발생하는 질병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피부암은 오랫동안 드문 질환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야외 스포츠를 즐기고, 햇볕이 강한 곳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생활 방식이 바뀌면 자주 발생하는 질병의 양상도 달라질 수 있다.

한국과 호주 간 바이오의학 연구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호주에는 피부암 예방과 검진, 치료를 통해 쌓아온 경험이 있고, 한국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과 연구진, 뛰어난 바이오 기술이 있다. 두 나라가 모두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는 셈이다.

때로 가장 좋은 국제 협력은 제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얻은 경험을 나누는 데서 시작한다. 내 정수리에 남은 흉터도 그 일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피부암에 관한 한, 햇볕이 남긴 청구서는 늦기 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