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원유 수입 줄이자"…'에탄올 혼용車' 시동

입력 2026-08-06 18:07
수정 2026-08-07 01:27
세계 3대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인도에서 급격한 자동차 연료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에탄올 함량이 85%에 이르는 ‘플렉스 연료’가 승용차에 본격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석유 수요 상당량을 중동에서 조달하는 인도가 미국·이란 전쟁 이후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꺼내 든 방안이다. 남아도는 농산물을 에탄올 생산에 투입해 농가 소득을 끌어올리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가 플렉스 연료에 관심을 나타내면서 이에 대한 대응에 따라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장기 실적이 영향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플렉스 연료 차량 판매 본격화
일본 스즈키자동차는 지난 6월 인도에서 플렉스 연료차인 ‘왜건R 바이오플렉스’ 판매를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와 도요타 등이 시제품을 선보인 적은 있지만 양산·판매까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격은 72만4000루피(약 1080만원)로 같은 사양의 휘발유 모델보다 13%가량 비싸다. 인도 최대 오토바이 업체 히어로모토코프와 일본 야마하·스즈키모터사이클은 플렉스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출시했다.

같은 달 인도 국영 석유회사들은 전국 48개 주유소에서 플렉스 연료 판매를 시작했다. 뉴델리 기준 L당 82.12루피로 에탄올 함량이 20%인 인도 일반 휘발유보다 20루피 저렴하다. 인도 정부는 플렉스 연료 판매 지점을 올해 말 500곳, 내년 말 5000곳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2001년 에탄올 혼합유 시범 사업을 시작한 인도는 지난해 새로 등록되는 모든 휘발유 차량에 에탄올 20% 연료 호환을 의무화했다. 에탄올 함량에 따라 인도 연료는 E5(에탄올 5%)부터 E100(에탄올 100%)까지 다양하다. E20은 인도에서 표준 연료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인도 정부는 이를 통해 해외 원유 의존도를 줄이려고 한다. 인도 석유계획분석실(PPAC)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88.7%에 달했다. 대부분 중동에서 들여온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어려워지자 에탄올을 통한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한 해 최대 5억t에 달하는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인도 농가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에탄올 주원료가 설탕을 만들고 남은 당밀이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에탄올 혼합유를 확대해 제당 업체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밀린 사탕수수 구매대금을 농가에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휘발유 대비 연비는 불리스즈키를 제외한 다른 자동차 업체도 인도의 ‘에탄올 전환’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 자동차 판매량은 약 552만 대로 중국(약 3440만 대)과 미국(약 1668만 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성숙된 시장으로 이미 수요가 줄고 있는 중국, 미국과 달리 인도 자동차 시장은 8% 이상 커지고 있다.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는 만큼 정책 지원을 등에 업은 플렉스 연료차 수요가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아직까지 시제품만 내놓고 있는 도요타와 현대차, 타타자동차 등도 조만간 양산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플렉스 연료차는 사탕수수와 옥수수 등 에탄올 원료가 풍부한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서도 판매가 가능하다. 브라질에서는 신차 판매 4대 중 3대가 플렉스 연료차일 정도로 대중화됐다.

일부에서는 인도 정부의 에탄올 혼합유 정책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탄올은 휘발유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같은 거리를 달리려면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즈키 왜건R 바이오플렉스 연비는 L당 15~18㎞로, 같은 사양의 휘발유 모델 연비(L당 23.56㎞)에 크게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에탄올 함량이 높은 플렉스 연료는 인도 표준 휘발유보다 L당 판매가가 낮지만 100㎞를 주행하는 데는 30~100루피가 더 든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