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클라바만 아셨나요?…'단맛'에 이토록 진심인 튀르키예 [신예희의 나홀로 한입여행]

입력 2026-08-20 10:47
수정 2026-08-20 11:09

우리나라 사람들이 디저트를 먹으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많이 달지 않아서 좋아요.”라는 거다. 칭찬이라지만, 좀 이상하다. 달지 않아서 좋다니, 그럴 거면 굳이 디저트를 왜 먹지? 그런데 처음으로 튀르키예 여행을 갔을 때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나라의 디저트는 뭘 먹어도 달다. 너무 달다. 시럽에 푹 담근 디저트를 접시에 듬뿍 담고선 그 위에 시럽을 한 국자 더 끼얹는 식이다. 심지어 홍차를 주문해선 각설탕을 두세 개씩 넣어 함께 마신다. 과하다, 과해.

하지만 신기하게도 튀르키예에서 지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 나라에선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란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튀르키예 음식으로 세 끼를 챙겨 먹고, 튀르키예 전통식 홍차와 커피를 몇 잔씩 마시고 나니 디저트 역시 튀르키예식으로 먹는 게 제일 잘 어울리는 거다. 평소에 먹던 것보다 훨씬 달고 거한데도 희한하게 입에 착 붙는다. 단순히 단맛에 중독된 거라고만 보긴 어려운 게,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입맛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에선 튀르키예 음식을 먹어야 컨디션이 좋고, 한국에선 한국 음식이 단연 최고다. 이런 것도 신토불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튀르키예의 디저트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공식적인 건 아니고, 그냥 내 마음대로 분류한 거다. 첫 번째는 쫀득쫀득한 젤리 형태로, 로쿰(Lokum)이라고 한다. 색과 모양이 워낙 화려해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인 그랜드 바자르에서도 유난히 눈에 띈다. 물에 설탕을 듬뿍 넣고 끓이다 옥수수 전분을 더해 걸쭉하게 하고, 과일즙으로 맛과 향을 내어 굳힌다. 가장 전통적인 건 장미를 증류한 액체를 듬뿍 넣어 굳힌 다음 말린 장미 꽃잎을 한가득 붙여 장식한 거라 무척 호화스럽다. 15세기, 오스만 제국 왕실 주방에서 개발한 모습 그대로라나. 레몬과 오렌지, 석류즙을 넣은 로쿰도 색이 선명해 보석처럼 예쁘다. 요즘 스타일로 초콜릿과 코코넛, 마시멜로 등의 재료를 쓴 것도 있다. 중요한 건 맛일 텐데, 과연 어떨까?

로쿰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론 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빼놓을 수 없다. 무시무시한 하얀 마녀가 어린 에드먼드에게 형제를 팔아넘기라고 유혹하며 그 대가로 로쿰을 듬뿍 안겨주는 장면 말이다. 에드먼드가 허겁지겁 로쿰을 입에 밀어 넣고 정신없이 먹는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인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로쿰에 대한 환상을 품었을 거다.

하지만 정작 그 맛은 우리의 기대를 살포시 배신한다. 산뜻하게 탄력 있는 질감이 아니라 치아에 쩍쩍 들러붙는다. 맛도 아쉽다. 처음 만들어졌을 땐 천연 과즙과 허브 추출물을 썼다지만, 이젠 대부분의 로쿰에 인공 향료와 식용 색소가 들어가 질감도 향기도 별로 유쾌하지 않다. 대량 생산된 로쿰은 되도록 피하고, 전문 베이커리를 찾아가 맛을 보며 고르시길.



두 번째는 푸딩 타입 디저트인데, 역시 호불호가 좀 갈릴 것 같다. 탱글탱글한 푸딩이 아니라 죽에 더 가까운 걸쭉한 게 대부분이라서다. 양도 워낙 많아, 식사 후 가볍게 입가심하려고 주문하기엔 좀 버겁기도 하다. 카페에서 책 한 권 펴두고 시간을 보내며 느긋하게 즐길 때 더 어울린다. 스푼으로 조금씩 떠서 입안에서 굴리고 씹으며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좋은 재료의 맛이 느껴진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사랑하는 홍차인 차이(Cay)도 한 잔 주문해서(설탕은 넣지 말자) 쌉싸래한 맛으로 입을 씻어주며 먹으면 첫입부터 마지막 한 입까지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푸딩은 카잔디비(Kazandibi)다. 우유에 옥수수 전분과 쌀가루를 넣어 살살 끓여서 걸쭉하게 만들고, 설탕을 아주 많이, 버터도 크게 한 숟갈, 바닐라 추출물도 넉넉히 넣은 거다. 뭐든 듬뿍 넣는 게 맛의 비결이랄까. 달콤하고 향긋한 우유죽이 완성되면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별도의 금속 쟁반에 버터와 설탕을 섞은 걸 잘 펴 바른 후 센불에 올려 진한 갈색이 나도록 태운 다음, 만들어둔 죽을 요 위에다 촤악 부어서 쟁반째로 냉장고에 넣고 밤새 굳힌다. 먹을 땐 바닥면까지 힘주어 긁으면서 떠내어 접시에 담는다. 눌어붙은 부분에서 누룽지 같은 향이 나는데, 덕분에 그냥 달기만 한 게 아니라 풍미가 깊어진다.


과일과 곡물로 만든 푸딩인 아슈레(A?ure)도 기막히다. 맛도 맛인데, 역사도 그렇다. 아슈레를 개발한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아마 다들 놀라시리라. 노아다. 노아의 방주를 만든 그 노아. 동물들과 함께 방주를 타고 한참을 표류하다 드디어 비가 그치자, 노아는 방주 안에 남아 있던 말린 과일과 곡물 등을 탈탈 털어서 달콤새콤하고 구수한 죽을 한 냄비 끓였단다. 이 최초의 아슈레를 인간과 동물 할 것 없이 함께 나누어 먹었고, 그때부터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디저트가 되었다나. 기원전 2300~3000년 경의 일이라니, 어떤 디저트를 가져다 대도 아슈레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겠다.

역사가 엄청나게 오래되고 의미도 지나치게 거창한 음식은 맛은 정작 그저 그렇기 마련인데, 아슈레는 맛있다. 아주 맛있다. 통밀과 병아리콩 등의 곡물과 건살구, 건무화과, 건포도 등을 물에 잘 불렸다가 설탕을 듬뿍 넣고(역시 듬뿍이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끓여 진득하게 만든다. 완성되면 차게 식혔다가 향기로운 시나몬 가루를 톡톡 뿌려 먹는다.

특히 살구의 역할이 중요한데, 상큼한 맛이 단맛을 중화시켜 주는 듯하다. 나는 아슈레의 맛에 홀딱 빠져, 급기야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곳이라는 아라라트산(A?rı Da?ı)에 찾아가기까지 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23시간가량 달려야 하고, 도착해서도 해발 3000미터 넘게 산을 올라야 하니 두 번은 못 갈 코스다. 그땐 젊었고, 뭘 몰랐고, 무릎이 튼튼했다.


튀르키예의 디저트, 세 번째는 파이류다. 마지막으로 남겨둔 이유가 있다. 이거야말로 백미다. 그 이름도 찬란한 바클라바(Baklava)! 가로, 세로, 높이 모두 3~4센티미터쯤 되는 자그마한 사각형의 파이인데, 이게 뭐라고 너무 맛있다. 어지간한 종이보다 더 얇은 파이 반죽을 겹겹이 쌓아 올려 구운 거다. 못해도 40장은 겹쳐야 제맛인데, 매 장마다 녹인 버터를 잘 발라줘야 한다. 이 과정을 허투루 했다간 반죽이 서로 들러붙어 파삭한 맛이 떨어진다.

중간중간 다진 견과류를 골고루 술술 뿌려가며 쌓는다. 오스만 제국 시절엔 왕궁의 주방에서든 가정집 주방에서든 직접 반죽을 얇게 밀었다지만, 이젠 마트 냉동식품 코너에서 쉽게 살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제과점도 꽤 많다. 좀 더 비싸고, 좀 더 맛있다.



반죽과 견과류를 겹겹이 잘 쌓고 난 뒤엔 원하는 크기로 칼집을 내어 오븐에서 굽는데, 나오자마자 곧바로 미리 만들어 둔 시럽을 콸콸 부어야 한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콸콸이다. 설탕과 꿀과 레몬즙을 물에 적당히 섞어 살살 끓이면서 잘 녹였다가 식힌 거라 달고 향긋하다. 시럽이 완전히 스며들도록 하룻밤 재웠다가 먹는 게 정석이다. 바클라바 전문점의 직원들은 바클라바로 가득 찬 큼직한 오븐 팬을 갑자기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홱 뒤집으며, 이래도 쏟아지지 않을 정도로 시럽이 잘 스며들었다는 퍼포먼스를 하곤 한다. 박수치며 감탄하면서도, 속으론 한 번쯤은 떨어져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제대로 만든 바클라바라면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서 작게 “프슈슈…”하는 소리가 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겹겹이 쌓인 파이 반죽 사이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라나. 과연 그렇다. 감촉은 파사삭, 소리는 프슈슈, 입안에 시럽이 퍼지며 버터 향과 견과류 향이 정신없이 폭발한다. 저항할 수 있나, 속절없이 한 접시 추가하는 수밖에.


직사각형과 마름모, 원기둥, 홍합 껍데기 모양 등 바클라바의 생김새는 다양한데, 공통점
은 하나같이 견과류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는 거다. 계량 따윈 하지 않는다는 듯 한 주먹 움켜쥐고 냅다 뿌린다. 앞서 이야기한 로쿰과 푸딩에도 역시 견과류가 듬뿍 들어간다. 슬슬 지친다. 이 나라는 대체 왜 뭐든 이렇게까지 듬뿍듬뿍 넣는 걸까. 튀르키예는 명실공히 견과류의 천국이다. 헤이즐넛과 피스타치오, 호두, 해바라기씨 등을 어마어마하게 생산하는데, 특히 헤이즐넛은 전 세계 총생산량의 약 75%를 차지할 정도다. 어지간한 헤이즐넛 초콜릿이나 과자를 집어 들고 원산지를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튀르키예산일 것이다.



피스타치오 역시 만만치 않다. 매년 10만 톤 이상이 튀르키예 남동부의 가지안테프(Gaziantep) 한 곳에서 생산될 정도다. 가지안테프는 유네스코 창의 도시로 지정된 미식의 도시로, 뭐니 뭐니 해도 바클라바의 고향으로 이름난 곳이다.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게 세 곳 중 한 곳은 바클라바 전문점일 정도다. 물론 특산물인 피스타치오를 듬뿍 넣어 만든다. 나무에 열린 어린 피스타치오도, 갓 수확해서 곧바로 볶은 피스타치오도 모두 이 지역에서 처음 만났다. 이미 숱하게 먹어본 건데도 어쩜 이렇게 다른 맛일까.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먹은 바나나도 그랬다. 나무에 매달린 채로 충분히 익은 바나나에선 이런 맛과 향이 난다며 놀랐다. 그뿐인가, 올리브 나무를 가로수로 쓰는 모로코에선 갓 짠 올리브오일을 마시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게 기름인지 주스인지, 어쩜 이렇게 산뜻하고 상쾌한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 여행자들은 우리의 어떤 음식에 나처럼 감탄하며 부러워할지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오늘도 단것을 너무 많이 먹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앞으로는 건강식만 먹으며 자중해야겠다. 부질없는 다짐인 걸 알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