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이어 중남미 자동차 시장까지 중국 완성차 업체들에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지난해 중남미에서 팔린 전기차 10대 중 9대가 중국 브랜드였고, 올 상반기 브라질에서는 비야디(BYD) 판매량이 현대자동차를 앞질렀다. 이들은 단순히 저가 공세를 넘어 현지 정책과 생산 거점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글로벌 지배력을 넓히고 있다. 완성차 판매의 70%가량이 수출에서 나오는 만큼 국내 완성차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기차는 이미 ‘중국산 천하’6일 브라질자동차유통연맹에 따르면 BYD는 올 상반기 브라질에서 9만9028대를 팔아 현대차(9만6723대)와 도요타(7만9969대)를 제치고 판매 4위에 올랐다. 상반기 판매량이 지난해 전체 판매량(11만2814대)에 육박한다. 2023년 0.8%이던 BYD의 브라질 점유율은 3년 만에 7.3%로 9배로 뛰었다. 연간 자동차 수요가 250만 대에 달하는 브라질은 세계 6위이자 중남미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칠레에서도 상반기 판매 상위 15개 브랜드 중 그레이트월모터(7위), 창안(8위), 엠지(11위), 체리(13위), 제투어(14위) 등 중국 업체 5곳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합산 점유율은 37%로 올라섰다.
시장 잠식은 전기차에서 더 심각하다. 시장조사업체 EV볼륨스에 따르면 중남미 전기차 시장의 중국차 점유율은 87.3%에 달한다. 지난해 중남미에서 판매된 전기차 10대 중 9대가 중국 전기차라는 의미다. 2022년 1만8000대에 그친 중남미 중국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30만5000대로 3년 새 17배로 불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중남미 전기차 시장이 중국 업체들에 완전히 장악됐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은 현지 정책을 철저히 활용하고 있다. BYD는 브라질 상파울루시가 전기차에 한해 2030년까지 차량 운행 5부제 시행을 면제해준 것을 마케팅 전면에 내세웠다. 현지 생산 거점을 통한 관세 무력화 전략도 병행한다. 지난해 7월 가동을 시작한 BYD 바이아주 공장을 비롯해 체리, 그레이트월모터 등은 현지 반제품 조립(CKD) 생산 체제를 구축해 물류비와 관세를 대폭 낮추고 있다.
유럽과 국내 시장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BYD는 올 상반기 테슬라·기아·폭스바겐을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브랜드에 올랐다. 지리차는 상반기 유럽에서 22만5000대를 팔아 점유율 3.1%를 기록하며 메르세데스벤츠(4.8%)를 바짝 뒤쫓았다. 국내에선 올해 상반기 중국산 수입차 판매량이 7만9444대로 전년 대비 127.8% 폭증했다. ◇ 국내 자동차 생태계 고사 위기업계에서는 밀어내기식 수출 전략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주요 중국차 업체는 지난 7월 일제히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냈다. BYD의 7월 수출량은 17만9841대로 전년 대비 124.3% 급증하며 월간 최대치를 새로 썼다. 전체 판매의 43%가 해외 물량이다. 체리는 전년보다 70.1% 많은 20만2533대를 수출해 중국 업체 중 처음으로 월 수출 20만 대 벽을 깼다. 지리차도 10만6663대를 수출하며 2개월 연속 10만 대를 넘겼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중국차의 영토 확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완성차 생산량(410만 대) 중 67%인 274만 대가 해외로 팔려나갔을 만큼 수출 의존도가 높아서다. 유럽과 중남미는 현대차그룹이 공들여온 핵심 시장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 출하액의 14.1%를 차지하고 156만 명의 직·간접 고용을 책임지는 만큼 해외 판로가 위축되면 국가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