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금수저 화가'.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대원의 이미지다. 밝고 환한 그의 작품이 굴곡 하나 없는 그의 인생 덕분에 가능했으리라 믿는 이들이다. 하지만 동서양의 특징을 한 폭의 캔버스에 담아낸 작가의 발자취는 이 단편적인 한 마디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고 집요했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관에서 이대원의 또 다른 면모를 살펴보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작가의 70년 화업을 돌아보는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다.
이대원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 산과 들, 담벼락 등을 화폭에 담아 '농원의 화가'로 불렸고, 빨강·노랑·분홍·초록 등 강렬한 원색을 구사해 '색채의 화가'로 기억되곤 한다. 경성제국대 법대를 졸업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간 이력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팔자 좋은 화가’ ‘행복한 화가’라는 이미지가 씌워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화가의 평안한 삶 이면의 모습을 조명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대원은 뛰어난 화가인 동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한 미술교육자이자, 문화행정과 외교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의 토대를 다진 문화지식인이었다”며 “이번 전시에서 화려한 풍경화가로 기억되는 그의 삶 이면에 자리한 치열한 조형 언어에 대한 탐구와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구축한 선구자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네 개의 전시실에서 70년 화업을 연대기 순으로 살핀다. 1930년대 초기작부터 말년에 완성한 길이 7m의 대작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순으로 구성해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 볼 수 있게 했다.
이대원은 동양과 서양 회화의 특징을 한 화면에 담았다. 특히 공예에 남다른 관심을 두었던 그는 전통 자수나 나전, 목공예, 자개, 소반 등과 같은 한국 전통공예품을 꾸준히 수집하고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2전시실에는 작가의 딸들이 소장해온 공예품과 작품을 함께 배치했다. 생전 그가 아꼈던 강화반닫이와 이를 그린 회화를 나란히 전시해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공예는 소재를 넘어 그의 회화 기법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작품 속 색점들은 쇠라의 점묘법을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을 서양 물감으로 그린 동양화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전시는 또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2전시장에 걸린 1964년 작품 ‘복숭아 밭'을 자개장과 함께 보면 화면을 채운 둥근 색점들이 자개 표면에 촘촘히 박힌 빛깔과 닮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자개장과 그림을 한 시선에 두고 보면 화면 속 원형의 점들이 자개장에 새겨진 빛을 닮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 자수처럼 여러 색의 실을 섞지 않고 병치하는 방식을 회화에 적용하고, 나전의 빛과 표면, 동양화의 점과 선을 적극 활용하는 등 자신만의 한국적 회화를 구축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 전시장에는 그가 말년에 남긴 역작들이 공개된다. 고향인 경기 파주의 과수원에 이젤을 세우고 완성한 작품들이다. 가로 5m에 달하는 ‘인왕산’과 ‘사과나무’, 길이 7m의 ‘도리화’ 등 압도적 스케일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소장했다가 추징금 환수 목적으로 압류돼 경매에 나온 1987년작 ‘농원’도 나와 있다. 전시장 바닥에는 작품이 반사되는 시트지를 깔아 관람객이 과수원 한가운데 들어선 듯한 몰입감을 연출했다.
전시는 문화계 리더로서 이대원이 남긴 발자취에도 주목한다. 그는 한국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 운영을 맡아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등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들을 해외에 적극 소개했다. 영어를 비롯해 5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외국인들이 즐겨 찾던 반도호텔 1층 반도화랑을 한국 미술의 국제 무대로 만들었다. 사진 자료 등의 관련 아카이브를 함께 전시해 문화경영인 이대원의 면모를 비춘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