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알아내" 날벼락 같은 유언… 박상영 장편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입력 2026-08-06 10:06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박상영(사진)은 젊은 세대 사랑과 고민을 집중적으로 다뤄온 작가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는 이전과 다른 방향을 향했다. 한국 현대 경제사의 굴곡을 배경으로 비극과 욕망, 사랑을 미스터리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것은 날벼락과도 같은 유언이다. 일본에서 평범하게 살던 하나는 화재로 중상을 입은 어머니 사치코에게서 ‘세일백화점의 윤동주 회장을 찾아가. 진실을 알아내’라는 말을 듣는다. 하나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 조용히 도시락을 팔던 어머니와 한국의 대기업 총수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하지만 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나는 사연을 알기 위해 한국으로 향한다. 인연이 있었던 한 한국 주간지 기자의 도움을 받아 오래전 사치코와 윤동주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과거를 파헤칠수록 어머니에게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과거 세일백화점 미인대회에 나가 윤동주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됐으며, 그 이후의 삶에는 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건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1부는 하나가 여러 사람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과거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뷰에 임한 윤동주의 말을 통해 어떻게 그가 집안의 남자들을 제치고 정점에 올라섰는지 독자가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2부에 들어서면 이야기의 중심이 사치코로 옮겨간다. 앞서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등장했던 사치코가 직접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굴곡을 겪으며 느꼈던 깊은 감정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작품의 강점은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사람의 기억에 당사자의 이야기가 포개지면서 독자는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과거의 비밀이 조금씩 공개될 때마다 그 단서가 암시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시대를 오가는 큰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미스터리 소설 특유의 오밀조밀한 흡인력을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다.

후반부에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제목의 ‘지푸라기 왕관’도 이야기를 전부 따라가고 나서야 한층 또렷하게 다가온다. 왕관을 쓰면 찬란한 곳에 올라 있다고 여겨지지만, 그것은 언제라도 불타 없어질 수 있는, 하잘것없는 것으로 꼬아 올린 왕관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덮을 때까지도 사치코의 마지막 선택이 떠오른다. 왜 평생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딸에게 마지막 순간 그런 말을 남겼을까. 끝까지 그 배경이 궁금하도록 하고, 전말을 파악하고도 곱씹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이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