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도시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그곳에는 사람의 시간이 흐른다. 나는 요즘 한낮의 뙤약볕 기세가 스러져가는 저녁 무렵 양재천을 찾곤 한다. 이곳은 한 편의 영화 촬영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해서 더욱 좋다.
양재천을 품은 양재 구립도서관과 그 앞의 야외 오솔숲 도서관, 그리고 독서 계단을 내려와 세월교를 건넌다. 야간 개장한 양재천 수영장의 슬로프에서는 아이들이 미끄러져 내려오며 웃음소리를 퍼뜨린다. 아이들의 웃음은 물살처럼 보드랍고 깨끗하다. 선베드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전해주는 동화를 듣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공간도 있다. 양재천 라운지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물멍’을 때리다 보면 마음 속 복잡한 생각도 함께 씻겨져 간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풀냄새, 물냄새, 그리고 잠자리 한 마리가 수면 위를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주연급 조연이다. 영동1교 아래의 복합놀이공간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인라인을 타는 아이들과 하늘을 가르는 집라인의 환호성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같은 장소에서도 아이들은 모험을 배우고, 부모는 그 자라남을 지켜본다. 라운지와 인라인과 집라인까지 ‘라라라~’ 흥겹다.
길을 따라 놓인 ‘하벨 벤치’에는 젊은 남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다. 상대가 누구든 대화는 도시를 연결하는 가장 따뜻한 인프라다. 콘크리트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 벤치는 말없이 들려주는 듯하다. 영동2교 밑 교각에서는 미디어아트가 음악과 빛의 갤러리를 선물한다. 조선시대 회화와 서양 명화, 패턴과 디자인 작품까지 다채롭다.
양재천의 명물 가운데 하나는 잉어들이다. 먹이를 주는 시늉만 해도 어느새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와 입을 뻐끔뻐끔거린다. 아이들은 신기해 하며 손뼉을 치고, 어른들도 어느새 어린 시절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자연은 거창한 설명보다 작은 감동 하나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수변무대 주변에서는 노래 연습도 하고, 가볍게 러닝하거나 산책도 하며, 휴식을 즐기는 주민들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 없다. ‘살롱 드 가든’ 데크길에 펼쳐진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키재기 한다. 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결 느려진다. 빠르게 지나치는 도시가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 그것이 양재천이 가진 힘이다.
나는 행정도 이런 양재천을 닮아야 한다고 믿는다. 시민이 먼저 걷고 싶은 길을 만들고, 아이들의 웃음을 지키며, 가족이 함께 머무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 행정은 시민의 일상이 더 편안해지도록 곁에서 흐르는 물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
양재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 쉼과 문화, 놀이와 대화가 하나로 이어지는 도시의 생활문화 플랫폼이다. 양재천을 따라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시민의 추억이 흐르고, 가족의 시간이 흐르며, 서초의 품격이 함께 흐른다. 양재천 영화에서는 컷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