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1주택자는 여기 사라고 찍어준 셈이잖아요.”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급매가 나오면 연락을 달라는 매수 문의는 많지만 정작 매물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부동산 세제개편안이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6억원 초과(시세 약 32억원) ‘초고가 주택’을 겨냥하자 20억원대 아파트가 밀집한 마포·용산·광진구 등지에서 매수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 이른바 ‘덜 똘똘한 한 채’에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고가 아파트가 집중된 강남권은 관망세가 우세하다. ◇장기 보유 고령자는 고심
부동산 정보 플랫폼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20억원대 아파트 비중이 높은 지역은 송파구(35%), 용산구(34%), 광진구(34%), 성동구(33%), 마포구(32%) 등이다. 이 가격대는 세제 개편의 직접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비켜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시가 30억원대 중반부터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여기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한시 완화까지 더해지면서 절세와 투자 가치를 동시에 고려한 ‘실거주 1주택’ 수요가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세제 개편 이후에도 기존과 동일한 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6억원 이하 구간(시세 31억원 이하), 한강 벨트, 경기 남부 주요 지역이 ‘절세 가능한 한 채’로 인식되며 갈아타기 수요가 집중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절세를 염두에 둔 수요가 20억원대 주택에 몰리며 이 구간 가격이 상승하는 ‘키 맞추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남권 시장은 관망 속에 일부 매물이 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강남구 매물은 지난 3일 9453건에서 5일 9686건으로 이틀 사이 2.4% 증가했다. 집주인들은 세 부담을 따져본 뒤 증여, 매도, 실거주를 결정하겠다는 분위기다. 압구정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용면적 132㎡ 이상 대형 아파트를 장기간 보유한 고령자의 고민이 깊다”며 “내년까지 세율이 유지되는 만큼 당장 호가를 낮추거나 매물을 급히 내놓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했다.
서초구 반포동 K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시세 상승이 세 부담을 상쇄할 것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며 “정책 변화가 잦은 만큼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일부 급매물이 등장하고 있지만 대출 규제 등 거래를 제약하는 요인도 적지 않다. 강동구의 K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매도 물건은 다주택자의 ‘세 낀 매물’이 대부분”이라며 “실거주 유예가 가능한 무주택자가 아니면 자금 계획을 맞추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세입자는 불안 호소전·월세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임차인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집주인의 세 부담이 임대료로 전가돼 전세보증금과 월세가 오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27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27% 올라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1.22%)을 크게 웃돌았다.
세금 부담을 고려한 집주인이 매도에 나서면 임차인이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 중인 A씨는 세제개편안 발표 직후 집주인에게 “주택을 매도할 계획”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새 매수자가 실거주에 나서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어 퇴거가 불가피하다. A씨는 “자녀 학교 문제로 멀리 이사하기 어려운데, 서울 전셋값까지 계속 오르고 있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구은서/임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