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비용항공사(LCC)가 일본과 동남아 중심의 기존 인기 노선 경쟁에서 벗어나 틈새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노선에서는 가격 외 차별화가 쉽지 않지만 단독 취항 노선은 초기 수요를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는 대신 자리를 잡으면 안정적인 수익과 선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4월 국내 LCC 중 유일하게 인천~알마티(카자흐스탄) 노선에 취항했다. 대형항공사 가운데서는 아시아나항공이 별도로 취항하고 있다.
알마티는 국내 기업들의 현지 진출이 활발해 기업 출장과 노무 관련 이동이 꾸준한 데다 교민·유학생 방문도 이어지고, 관광지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갖춘 시장이다.
이스타항공은 취항 이후 현지 지점을 설립하고 영업 활동을 확대하며 안정적인 탑승객 기반을 다졌다. 그 결과 운항 초기 70%대였던 탑승률은 올해 6월 80%를 넘어섰다. 인바운드 비중도 지난해 40% 초반에서 올해 절반 수준으로 확대되며 노선 구조도 점차 안정되는 모습이다.
인천 노선이 안착하자 이스타항공은 올해 5월 국내 항공사 최초로 부산~알마티 노선도 개설했다. 초기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노선이었지만 지난해 11월 부정기편 운항 당시와 비교해 올해 7월 편당 탑승객 수는 89% 이상 증가했고, 취항 이후 매달 탑승률도 3~4%포인트씩 상승하고 있다.
알마티 노선의 성공을 발판으로 다른 틈새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0월 국내 항공사 최초로 인도네시아 마나도 노선에도 취항했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알마티는 안정적인 비즈니스와 교민 수요뿐 아니라 자연경관을 앞세운 관광지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높은 시장"이라며 "기존 인기 노선에 더해 성장 잠재력이 높은 여행지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고객 선택의 폭을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LCC들도 경쟁이 덜한 전략 노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어서울은 코로나19 이후 국내 항공사 가운데 가장 먼저 일본 다카마쓰 노선 운항을 재개했고, 재운항 첫해 탑승률은 90%에 육박했다. 이후 다른 LCC들도 일본 소도시 노선 복항과 신규 취항에 잇따라 나섰다.
제주항공은 국내 LCC 최초로 인도네시아 정기노선인 인천~바탐에 취항하면서 신규 시장을 개척했다. 이후에도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한 노선을 중심으로 취항지를 확대, 노선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지방공항 기반 LCC도 단독 노선을 통한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청주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에어로케이는 오비히로와 이바라키 등 청주공항 단독 노선을 잇따라 발굴했다. 또한 청주~중국 청두 노선도 오는 11월 취항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에어로케이 관계자는 "새로운 취항지를 선보이면서 해당 지역과의 네트워크를 넓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을 발굴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은 항공사의 모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목적지 지자체들도 신규 노선 유치를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항공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야놀자리서치에 따르면 일본 에히메현은 마쓰야마 노선에 취항하는 외항사를 대상으로 탑승률이 70%에 미치지 못할 경우 손실 일부를 보전하는 협약을 운영했다. 실제 운항에서는 탑승률이 85% 이상을 기록해 손실보전금이 지급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안전장치가 신규 취항에 따른 불확실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마쓰야마는 한국인 여행객을 위해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관광시설 할인권을 제공했고, 다카마쓰에서는 가가와현이 에어서울과 공동 프로모션을 통해 관광지 입장권과 음식점 할인, 공항리무진 이용 혜택 등이 담긴 쿠폰북을 배포했다. 항공사와 지자체가 함께 신규 여행 수요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단독 노선 확보가 항상 유리한 전략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단독 노선이 무조건 좋다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노선이 잘 되는 게 확인되면 다른 항공사들도 뒤따라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단독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유가와 고환율, 공급 확대 등으로 LCC 업계의 수익성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기존 인기 노선의 운임 경쟁에서 벗어나 경쟁이 덜한 전략 노선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기존 인기 노선은 공급이 집중되면서 운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여행 수요가 유명 관광지에서 새로운 목적지로 다변화하는 추세와 맞물려 경쟁이 덜한 전략 노선을 먼저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