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회사에서 느끼는 자율성, 성장 기회, 공정성 같은 비금전적 보상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직장인 3만여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이 보상 점수가 1점 오르면 연봉을 약 600만원 올려준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이직 의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보이는 월급 명세서에는 없는 '두 번째 연봉'이 직원을 붙잡고 있다는 얘기다.자율성·공정성을 돈으로 환산했더니5일 한경닷컴이 입수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블라인드 지수 연간 리포트 2026'을 보면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연구팀은 이 리포트에서 기업별 '정서적 연봉' 순위를 공개했다. 해당 리포트는 팀블라인드가 지난해 하반기(7~12월) 재직 인증을 완료한 한국 직장인 3만4372명을 조사한 결과로, 연구팀은 여기에 블라인드 리뷰 데이터를 더해 분석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업무환경, 성장기회, 공정성, 인간관계 등 직원들이 일터에서 경험하는 비금전적 보상을 계량화한 뒤 이직 의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비금전적 보상 점수 1점 상승은 연봉 약 600만원 인상과 맞먹는 수준으로 이직 의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경쟁사 대비 수준과 전년 대비 개선 정도를 함께 반영해 기업별 정서적 연봉을 산출했다.
정서적 연봉은 단순한 만족도 지표가 아니라 구성원이 조직에서 체감하는 비금전적 보상의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한 인적자본 지표라는 설명이다. 순위는 신 교수의 저서 '정서적 연봉'과 블라인드 리뷰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출됐다.1위 한국전력기술 1억1888만원상장사 기준 정서적 연봉 1위는 한국전력기술로 1억1888만원이었다. SK하이닉스가 1억155만원으로 2위에 올랐고 자화전자(9775만원), OCI(8594만원), 네이버(8335만원)가 5위권을 형성했다.
이어 SK케미칼(7962만원), 멀티캠퍼스(7777만원), LF(7635만원), 코오롱글로벌(6855만원), 현대해상화재보험(6573만원)까지가 상위 10개사에 이름을 올렸다. 에너지 공기업부터 반도체, 화학, 패션, 보험까지 업종은 제각각이다.
정서적 연봉 상위권은 블라인드 지수 성적과도 겹친다. 블라인드 지수는 구성원이 한 해 동안 회사에서 느낀 주관적 행복도를 측정한 지표다. 블라인드 AI를 활용해 기업별 최소 표본 기준을 충족한 곳만 분석했다. 전수조사는 아니지만 현직자 인증과 표본 기준을 거친 만큼 구성원이 체감하는 회사별 근무 환경을 비교하는 자료로 활용 가능하단 설명이다.
1위 한국전력기술은 올해 블라인드 지수에서도 75점으로 전체 9위에 올랐고, 네이버는 IT 업계 비교에서 상위 2%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리포트의 반도체 업계 분석에서 복지, 윤리, 조직몰입 등 전 영역에 걸쳐 삼성전자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비용정서적 연봉이 주목받는 것은 재무제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해설에서 마음이 떠난 구성원이 만들어내는 암묵적 비용이 생산성과 혁신, 협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구성원의 몰입과 신뢰, 성장 경험 같은 무형의 자산은 현행 회계기준으로 측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식 기반 경제에서 재무 정보만으로 기업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
올해 블라인드 지수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동안 이직 시도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만큼, 몸은 남아 있지만 마음이 떠난 직원을 붙잡을 비금전적 보상의 무게는 더 커졌다는 게 연구팀의 진단이다.
신 교수는 "사람을 회사로 오게 하는 것은 연봉이지만,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것은 정서적 연봉"이라며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은 급여 수준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매일 경험하는 자율성, 성장, 인정과 존중, 그리고 건강한 조직문화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