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정' 내세웠지만…엔화 방어로 챙긴 '세 가지 국익' [최만수의 재팬 인사이트]

입력 2026-08-04 08:46
수정 2026-08-04 08:50


“미국의 엔화 매수 개입은 양국 우정의 증표다.”

미국과 일본이 약 40년 만에 엔화 약세·달러 강세를 막기 위한 이례적인 협조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 이를 ‘우정의 증표’라고 표현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의 미국 국채 매각과 이에 따른 미국 장기금리 상승을 막으려는 미국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위해 힘쓰고 있다”며 경제안보와 국가안보 차원에서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개입 방식을 보면 미국의 현실적인 속내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미국은 달러가 아니라 유로를 팔아 엔화를 사들였다.

일본의 엔화 방어에는 협력하되, 미국 스스로 달러를 팔아 ‘미국 매도’에 가담하는 모습은 피한 것이다. 달러의 신뢰를 훼손하거나 미국 국채시장에 불안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 엔화 가치만 끌어올리려 했다는 해석이다.

일본 정부는 3일 미국과 협조해 엔화 매수 개입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미·일 양국의 협조 개입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직후 이후 약 15년 만이다. 금융위기나 대규모 재해가 아닌 상황에서 양국이 공동으로 환율 방어에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번 개입은 양국이 동시에 엔화를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미국은 일본이 엔화 매수 개입에 필요한 달러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미국 중앙은행의 ‘FIMA 레포 퍼실리티’를 활용하기로 했다.

FIMA 레포 퍼실리티는 외국 중앙은행이나 통화당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미국 중앙은행에서 달러를 빌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일본은 보유한 미국 국채를 시장에서 직접 팔지 않고도 달러를 확보해 엔화 매수·달러 매도 개입을 이어갈 수 있다.

일본은 약 1조30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이 미국 국채다. 엔화 방어에 대규모 달러를 투입하려면 보유한 미국 국채를 팔아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외환보유액 규모가 크더라도 실제 개입에 즉시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금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도 이 제도는 유리하다. 일본이 개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팔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미국 장기금리는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엔화 방어를 돕는 동시에 미국 국채 매각이라는 ‘악몽’을 차단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미국의 금리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동 정세 불안과 인플레이션 우려, 미국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이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계감으로 미국 장기금리는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을 높일 뿐 아니라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물가와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리 상승이라는 추가 악재를 피해야 한다. 엔화 약세를 방치했다가 일본의 미국 국채 매각으로 이어지고, 그 충격이 미국 금리와 가계 부담으로 번지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협조 개입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엔화 약세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점도 협조 배경으로 꼽힌다. 엔저가 장기화하면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대미 수출이 늘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확대될 수 있다. 일본산 제품에 부과한 ‘트럼프 관세’의 효과도 엔저로 상당 부분 상쇄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우정’과 미·일 동맹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세 가지 자국 이익을 지킨 셈이다.

첫째, 엔저로 일본 제품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미국의 관세 효과가 약화되는 것을 막았다. 둘째, 일본이 환율 방어 자금을 마련하려고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해 미국 장기금리가 뛰는 상황을 차단했다. 셋째, 달러를 직접 팔지 않고 유로를 팔아 엔화를 사들이면서 달러의 신뢰도 지켰다.

미국이 엔화 방어를 지원한 대가로 일본 정부에 재정·금융정책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힘을 빌려 당장의 엔화 급락을 막았지만, 앞으로 적극재정과 완화적 정책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여지는 좁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결국 이번 협조 개입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일본은 미국의 위광과 달러 자금 지원을 활용해 엔화 매도세를 막고, 미국은 일본의 미국 국채 매각과 장기금리 상승, 무역적자 확대를 피할 수 있다. 40년전 플라자합의처럼 ‘우정의 증표’라는 외교적 수사 뒤에는 달러와 미국 국채의 신뢰를 지키고 자국의 통상 이익을 확보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철저한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