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벗어난 자에게만 보인다··· 나미브 사막에서 찾은 위안 [서병철의 은퇴 후 잘사는 법]

입력 2026-08-06 17:00

오른손 손등을 보이며 엄지손가락을 90도로 편다. 집게손가락을 슬며시 구부리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모아 쭉 뻗어본다. 아프리카 서남부, 대서양을 품은 나라 ‘나미비아(Namibia)’의 국경과 묘하게 닮은 모양새다. 위트 있는 손가락 제스처가 그려진 티셔츠를 사 입고, 1489km에 달하는 기다란 해안선을 지닌 이 낯선 땅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미비아의 바닷가 도시 스와콥문트(Swakopmund)는 31년간 독일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박공지붕과 파스텔 색조 외벽을 보유한 건축물이 여전히 즐비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불법 점령당했던 수탈의 아픔 때문일까. 자국 화폐인 나미비아 달러(NAD)와 함께 남아공 란드(ZAR)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모습에서는 역사의 지워지지 않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러나 1990년에야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이뤄낸 이 땅의 사람들은, 굴곡진 세월의 그늘 따위는 잊은 듯 길거리 어디서나 환한 미소로 이방인을 반겨준다. 사막을 가르는 스릴: 안전지대를 벗어날 때 비로소 시작되는 삶의 희열과 새로운 세계나미비아 여행을 떠난 진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붉은 모래의 땅, ‘나미브 사막(Namib Desert)’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과거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슬픈 눈망울의 낙타를 타고 생텍쥐페리의 흔적을 쫓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정해진 루트만 둘러보아야 했던 그때의 아쉬움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번만큼은 정형화된 관광 코스를 벗어나 사막의 진짜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다. 낙타 대신 쿼드 바이크(Quad Bike)를 선택한 이유다.

처음에는 앞차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가는 일정한 행렬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다. 한 동행자의 제안으로 단체 대열에서 과감히 이탈해, 바퀴 자국 하나 없는 미지의 모랫길로 접어들었다. 타인이 다져놓은 안전한 길을 벗어나는 순간, 먼저 낯선 불안감이 엄습했다. 완만한 커브 길에서도 핸들이 다소 흔들리며 중심을 잃을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동행인들과 거리가 벌어지자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아득한 고독감마저 밀려왔다.

인적조차 사라진 사막 깊숙한 곳, 경사가 70도에 육박하는 아찔한 모래 언덕이 가로막았다. ‘과연 저곳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지만, 정상 부근에서 차체가 좌측으로 미끄러지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뒤집혀서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는 숨 막히는 공포가 덮쳐왔다. 다행히 중심을 잡고 제자리로 돌아온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i>“인생 뭐 있어, 다시 가보는 거야.”</i>

다시 한번 가속기를 꾹 눌렀다. 거친 엔진음과 함께 고비를 넘어선 순간, 눈앞에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사막의 절경이 들어왔다. 두려움의 뒤편에서 피어오르는 짜릿한 쾌감은 비할 데 없이 강렬했다. 곧이어 80도에 육박하는 가파른 내리막 경사. 수직 폭포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 같은 극도의 공포가 다가왔지만, 큰 고비를 넘겨 담대해진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무사히 평지에 발을 내디뎠을 때, 전율 같은 행복감이 온몸을 감쌌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회가 정해놓은 안전한 궤도를 따라 살아간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삶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나미브 사막에서 짧은 몇 초 동안 겪은 극한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내 안의 잠든 감각을 강렬하게 깨워주었다. 과감히 자신을 위험에 던졌을 때 얻은 것은 단순히 해냈다는 희열만이 아니었다. 안전지대 너머에 존재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비로소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대서양과 사막의 교차: 나미브가 가르쳐준 우연과 연대사막의 스릴을 지나 다다른 샌드위치 하버(Sandwich Harbour)로 향하는 길목은 또 다른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소금 광산과 붉은 홍학 무리를 지나자, 광택이 도는 검은 깃털의 케이프 가마우지 수천 마리를 만났다. 먹잇감을 포획하기 위해 바다를 향해 일제히 비상하는 무리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고스란히 전했다.


어느덧 왼편으로는 아이보리 베이지 사막이, 오른편으로는 일렁이는 푸른 대서양 파도가 절묘하게 교차했다. 모래 위를 걷다 보니 바닷바람이라는 작가가 모래를 소재로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남겨 놓은 것을 찾아냈다. 부분 문신을 하고 배꼽을 드러낸 나신(裸身)과 흡사하다. 저 멀리 사막의 능선을 따라 대서양을 향해 걸어가는 한 여인이 보였다. 점차 작아지다 한 점이 되고, 마침내 모래 언덕 뒤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경외감과 함께 한없이 미미한 인간의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대한 정적의 한가운데서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볼일을 보러 잠시 길을 벗어났던 현지 가이드가 모래 구덩이에 빠져 고립된 차 한 대를 발견한 것이다. 헛바퀴만 돌며 갇혀 있던 그의 차를 동아줄로 묶어 무사히 견인해 냈을 때, 큰일 날 뻔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에게 곤경에 처했던 벨기에인 관광객은 그저 쿨하게 웃으며 말했다.

<i>“나는 원래 모험을 즐기니까요, 괜찮습니다.”</i>

비행기 추락으로 사하라 사막에 일주일간 고립되었다가 구사일생하여 <어린 왕자>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작가 생텍쥐페리가 떠올랐다. 그는 구출된 후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벨기에인은 아찔했던 고립의 순간을 모험가의 훈장처럼 유쾌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만약 현지 가이드가 잠시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경외감과 우연이 교차하는 사막은, 누군가에게는 깊고 숭고한 인간적 연대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다.

데드블레이의 고목이 건넨 위로나미비아 사막 깊은 곳에는 세월이 멈춘 듯한 세계적 사진 명소, ‘죽은 습지’를 뜻하는 ‘데드블레이(Deadvlei)’가 있다. 약 1000년 전 강물이 거대한 모래 언덕에 가로막히면서 수분이 끊겼고, 그곳에서 자라던 아카시아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극도로 건조한 덕분에 부패하지 않은 채, 강렬한 사막의 햇볕 속에서 검게 풍화되어 약 90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내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 털썩 주저앉아 시선을 낮추어 보았다. 수백 년의 시련을 견디다 못해 무너진 거대한 고목 틈 사이로, 개미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관광객의 형상이 들어왔다. 900년 전 사멸한 고목의 시간과 오늘을 거니는 인간의 시간이 한 시선 안에서 교차했다. 대자연과 세월의 흐름 앞에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하지만 그 하찮음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버티며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고목의 모습은, 인생의 모든 풍파를 묵묵히 살아온 노년의 자화상, 특히 늙고 추한 자기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꾸밈없이 성실히 표현한 임종 직전에 그린 렘브란트의 자화상 모습과 닮았다.


현지 나마(Nama)족 언어로 '나미브(Namib)'는 '아무것도 없는 땅' 혹은 '아무도 없는 광활한 공간'을 뜻한다. 이 거대한 사막의 이름은 훗날 ‘나미비아(Namibia)’라는 국명의 뿌리가 되었다. 결핍과 부재를 뜻하는 그 이름처럼, 나미브는 오직 모래와 바람만이 존재하는 비움의 거대한 공간이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섰을 때, 비로소 시선은 내면으로 향하고 자신의 진솔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채우려 했던 삶의 욕망을 비워내고,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요즘 미디어 콘텐츠가 대세다. 수많은 영상 속에서 간접 경험하며 대리 만족하기도 하고 직접 경험한 듯 착각하기도 한다. 시간적 금전적인 제약을 핑계로 직접 경험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에 인문지리학자 이푸 튀안(Yi-Fu Tuan)은 "경험이란 낯선 곳으로 과감히 나아가고, 불확실성과 잠재적인 위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한다.

단단했던 일상의 벽을 허물고 낯선 사막의 품에서 호흡했던 시간. 거대한 자연 속에서 겸손을 배우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얻은 나미비아에서의 여정은 끝났지만, 그 붉은 모래바람은 여전히 내 삶을 향해 불어오고 있다. 편안함 대신 선택했던, ‘불편해 보이는 직접 경험’이야말로 내 삶을 지탱할 대체 불가능한 자산임을 깨달았다. 머지않아 다시 그 거친 친구를 만나러 또다시 먼 길을 떠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