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가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습니다. 복수노조할 때도, 주 52시간제 도입 때도 다 망한다고 했지만 결국 별일 없었잖아요. 이번에도 그럴 겁니다.”
지난해 8월 말 사석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민주당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을 담은 1차 상법 개정에 이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2차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제2·3조)까지 강행 처리한 직후였다. 경영계는 법안 통과 때마다 부작용을 경고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올해 2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3차 상법 개정까지 마쳤다.
몰아치기식 경제 입법이 시작된 지 1년, 그의 전망은 얼마나 맞았을까. 복수노조, 주 52시간 근로제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는 신호가 뚜렷하다. 두 제도는 시행 전 수년간 노사정 협의와 유예기간을 거쳐 세부 기준을 다듬었지만, 이번엔 의원 입법으로 속도전을 벌이며 이 과정을 건너뛰었다. 그 부담은 법원과 기업 현장에 떠넘겨지고 있다.
당장 노란봉투법부터 경영계가 우려한 문제가 터졌다. 모호한 조항 탓이다. 근로 계약이 없어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면’ 사용자로 간주하고, 노동쟁의 범위를 ‘사업 경영상의 결정’까지 넓히면서도 구체적 판단 기준은 두지 않았다. 근로자 손해배상까지 제한하자 사용자성을 가려달라는 분쟁이 수백 건 쏟아졌고, ‘영업이익 n% 성과급’ 요구도 여러 업종으로 번지고 있다.
급기야 삼성전자 노조는 회사의 호남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까지 내년도 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쟁의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다”며 대안 마련을 지시한 이유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쟁의 범위와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들어간 건 다행이지만, 노동계가 반발하는 데다 시행령 위임 근거도 없어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학계 지적도 변수다.
상법 개정은 어떤가. 소액주주 보호, 주주가치 제고라는 취지는 반도체 초호황과 맞물려 코스피지수 급상승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노란봉투법만큼 주목받지 않았을 뿐 법적 불확실성과 후유증은 마찬가지다. 코스피 5000 공약을 서둘러 이행하려다가 법 조문만 바꾸고 연관 규정은 손대지 못했거나 실무적 역효과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탓이다.
주주 충실의무 도입으로 이사 손해배상 가능성은 커졌지만 명확한 면책 기준이 없어 초반부터 논란이 됐다. 주주 충실의무는 자회사 중복상장 규제 강화로 이어져 기업공개(IPO) 급감의 주요 원인이 됐다. 올 상반기 신규 상장 건수와 공모 금액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고, 상장을 전제로 재무적투자자(FI) 자금을 유치한 기업들이 수천억원에서 조 단위 투자금을 상환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금융당국이 상장 규정을 고쳐 최대주주 등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을 요구하면서 자회사 상장은 더 어려워졌다. 한 대형 로펌의 상법 전문 변호사는 “기업들이 기존 방식으로 자본을 조달해 신사업에 투자할 길이 사실상 막혔다”며 “재무·법무 담당자가 느끼는 혼란은 노란봉투법에 못지않다”고 했다.
내년 2~3월 정기 주주총회는 또 다른 시험대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더해 감사위원 선임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산해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까지 처음 적용된다. 가령 대주주가 특수관계인 4명과 각각 지분 6%를 보유했다면 기존에는 총 15%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총 3%로 줄어든다. 반면 2대주주 이하에는 이 같은 제한이 없다. 해외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규제다.
경영계는 행동주의펀드와 헤지펀드가 이사회에 대거 진입하거나 지배권이 2대주주로 넘어가는 혼란이 내년 주총에서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장회사 전자주주총회도 시행 시기부터 내년으로 못 박았지만 정부의 세부 운용 지침은 아직도 안 나왔다.
노란봉투법은 문제가 커진 뒤에야 정부가 보완에 나섰다. 상법도 같은 길을 걷게 해선 안 된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의무공개매수제도, 권고적 주주제안제,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법제화 등 후속 입법이 뭐가 됐든 ‘선입법·후보완’의 악순환도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