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와 동시에 '빚 50억'…해체 직전 살아남은 아이돌 현실

입력 2026-08-04 07:00
수정 2026-08-04 09:02

“한 번도 빛난 적 없었던 미지의 향으로 온 세상을 물들여.” 5인조 걸그룹 리센느의 ‘러브 어택’에 나오는 가사다. 가사 그대로 리센느가 세상을 물들였다. 2024년 8월 발표한 이 노래가 ‘역주행’하며 음원 차트 1위에 올랐고 편의점, 외식, 음료 등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게 됐다. 신생 기획사 소속 ‘중소돌’이 일으킨 반란에 숨은 경제 이야기, 한편으로 화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냉혹한 아이돌의 경제학을 살펴본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세계아이돌 산업은 승자독식의 ‘슈퍼스타 경제’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분야다. 슈퍼스타 경제란 소수의 특급 스타가 압도적으로 큰 보상을 얻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이던 셔윈 로젠이 1981년 발표한 논문 ‘슈퍼스타 경제학’에 나온 개념이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음반 판매량에서 방탄소년단(BTS)이 22.1%의 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였다. 2위 엔하이픈(11.5%), 3위 블랙핑크(9.1%) 등 3개 그룹이 전체의 42.7%를 차지했다. 4위 알파드라이브원, 5위 에이티즈까지 합하면 상위 5개 그룹의 점유율이 55%에 달한다. 그런 한편에선 수입이 아예 없는 아이돌그룹도 수두룩하다.

이와 같은 슈퍼스타 경제가 나타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슈퍼스타의 대체 불가능성과 제로에 가까운 한계생산비용이다. 아이돌 산업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췄다. 수많은 아이돌그룹이 있지만, BTS 같은 초특급 스타를 대신할 만한 그룹은 별로 없다. 또 이들의 음악과 공연은 대중매체와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추가 생산비용 없이 세계 소비자에게 전파할 수 있다. K팝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데뷔만 해도 ‘빚더미’‘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도 아이돌 산업의 특징이다. 모 아니면 ‘빽도’인데 빽도가 나올 확률이 훨씬 높다. 희박한 확률이라도 기회를 잡으려면 엄청난 돈과 시간,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연습생을 뽑아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영어 등 외국어를 학습시키고, 음반·뮤직비디오 제작과 의류비, 식비, 마케팅비까지 돈 들어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기획사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아이돌그룹 한 팀이 데뷔하기까지 많게는 50억원 넘게 들어간다고 알려졌다.

방송에 한 번 출연하려면 헤어·메이크업비, 의상비, 스태프 식비 등으로 1000만원이 넘게 든다. 활동 없이 쉬고 있을 때도 월 3000만원이 든다는 얘기도 있다. 4~5명의 멤버가 함께 지낼 숙소 월세만 적게 잡아도 200만~300만원이니 그럴 만하다. 기획사가 아이돌그룹과 7년의 장기 계약을 하는 것도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투자 비용을 회수하려면 1~2년으로는 턱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돌 멤버들도 엄청난 기회비용을 감수한다. 기획사의 ‘투자’가 이들에겐 ‘빚’이다. 활동하면서 번 돈은 일단 기획사의 투자비를 회수하는 데 들어간다. 그 비용을 다 메우고 나서야 비로소 멤버들이 수익을 ‘정산’ 받는다. 그나마도 기획사와 반씩 나누고, 멤버들끼리 n분의 1로 나눈다. ‘러브 어택’이 차트 1위에 오른 날 리센느 멤버들은 유튜브 라이브에서 눈물을 쏟았다. 단지 감격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마터면 해체될 뻔막대한 투자와 오랜 인내 끝에 데뷔했는데 인기를 얻지 못하면 그때부턴 손실이 늘어 간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길게 잡아도 데뷔 후 3년 안에 뜨지 못하면 가망이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럴 경우 팀을 해체하는 것이 기획사에나 멤버들에게나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동안 들인 비용은 어차피 거둬들일 수 없는 매몰비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3년을 못 넘기고 해체하는 그룹이 많다.

별다른 성과가 없는데도 3년을 넘기는 아이돌그룹 역시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더 큰 손실이 예상됨에도 추가로 비용을 투입하는 것을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한다. 브레이브걸스와 EXID처럼 뒤늦게 역주행해 정상에 선 그룹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올해가 데뷔 3년 차인 리센느도 역주행에 성공하지 못했으면 다른 수많은 아이돌처럼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매몰비용의 오류를 넘어선 또 하나의 역주행 서사가 탄생했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