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년 포르투갈 국왕 주앙 1세는 지브롤터해협 근처 북아프리카 해안 쪽에 자리 잡은 조그만 섬 세우타를 점령했다. 200여 척의 함선과 4만5000여 명의 병력이 동원된 이 원정은 세계사의 분기점으로 꼽힌다. 유럽 국가가 본격적으로 해외 식민지를 세우며 팽창해 나간 출발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대서양과 지중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좁은 병목에 있는 군사 요충지로서 세우타에 주목했다. 곧이어 세우타는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진출 거점이 됐다. 동시에 악명 높은 대규모 노예무역의 문이 열렸다. 1581년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합병되면서 세우타의 주인이 스페인으로 바뀌었지만 한번 둑이 터진 물결은 되돌릴 수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이 식민지 건설 경쟁에 가세하면서 제국주의가 세계로 확산했다.
식민주의의 기폭제가 된 세우타의 운명처럼 역사는 종종 작은 일이 큰일로 번지곤 한다. 변화를 불러오는 데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경우도 있다. 1989년 동독 정부 대변인인 귄터 샤보프스키가 기자회견에서 “(동독 주민의 여행 자유화가) 지금 즉시(sofort) 시행된다”고 잘못 발표하자 수많은 동독 주민이 국경 검문소로 몰려들었다. 철벽같던 베를린 장벽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난달 30~31일 모로코 북부 해안에서 6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바다를 건너 스페인령 세우타로 월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단 하루 만에 섬 주민 수(8만35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불법 월경 사태가 벌어지자 난민 대량 유입을 우려한 스페인과 유럽연합(EU)에 비상이 걸렸다.
수많은 사람이 세우타로 몰린 데에는 스페인 대법원이 지난달 ‘해상 월경자는 즉각 추방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실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청년들이 앞다퉈 바다로 몸을 던졌다. 청년 실업률이 29.2%에 달하는 모로코의 경제난이 이번 사태 밑바닥에 깔려 있다. 600여 년 전 세우타는 아프리카를 향한 유럽의 칼 역할을 했다. 오늘날 세우타는 유럽을 향한 아프리카의 칼날이 됐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