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마트폰 제조 기술은 세계 최고지만 상당 부분을 로열티로 냅니다. 인류의 핵심 에너지원이 될 핵융합에서는 ‘퍼스트무버(시장 개척자)’가 돼 이런 전례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김태경 이터나퓨전 대표(사진)는 지난달 31일 기자와 만나 “기술이 좋아도 ‘패스트팔로어(빠르게 추격하는 모방자)’로는 한계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터나퓨전은 국내 첫 핵융합로 설계라는 핵심 미션에 도전한 최초의 스타트업이다.
핵융합 발전은 석유를 대체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인공지능(AI)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탄소 배출 없이 무한한 청정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주요 국가가 에너지 패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거는 분야다. 김 대표는 “AI 발전으로 2030년까지 AI데이터센터에만 추가로 원전 70기 분량의 전력이 더 필요하다”며 “무탄소 에너지원으로는 사실상 핵융합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했다.
김 대표는 국내 유일의 구(球)형 핵융합 실험 장치인 서울대의 VEST에서 연구하며 창업을 결심했다. 이 때의 연구 노하우를 기반으로 이터나퓨전이 고안한 이 기술은 ‘토카막(인공태양) 인젝션’이다. 핵융합 상용화의 걸림돌은 연속 운전이 어렵다는 점인데, 이 기술은 작은 플라스마를 큰 플라스마에 섞는 방식으로 전류를 지속 공급해 연속 운전을 가능하게 한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정부 연구개발 사이클에 의존할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글로벌 핵융합계를 주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터나퓨전의 목표는 2037~2038년 전력을 생산하는 상용 핵융합 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미국 커먼웰스퓨전시스템(CFS) 등이 글로벌 핵융합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김 대표는 “그들 역시 연속 운전, 소형화에서 풀지 못한 숙제가 많다는 점은 같고 우리는 훌륭한 제조업 기반이 있다”며 “그들이 하는 방식으로 가면 결국 패스트팔로어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h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