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부모에게 자식이란

입력 2026-08-02 17:59
수정 2026-08-03 00:05
지난주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들과 아버지를 추억하는 시간을 보냈다. 약주 좋아하시고 주변에 자식 자랑 많이 하셨던 아버지였다. 본인은 공부를 그렇게 많이 못 하셨기에 공부 잘하는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고, 자식들 공부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 사셨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니 지금 내가 이렇게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도 아버지의 기대와 격려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정말 한마디로 얘기하기 어려운 관계다. 애정이 넘치는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부모 기대와 달리 엇나가는 자식도 있고 부모 욕심이 과한 경우도 많다. 특히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으로 인한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로 부모와 자식 세대 간 갈등도 크다. 우리 부모님은 그 당시 대다수 부모님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식을 위해 많이 희생하고 자식들 공부가 최우선이셨던 분들이었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기대도 컸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가 내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다. ‘아버지 몫까지 살아야 하는가’ 하는 부담도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반항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법대에 가길 희망하셔서 재수까지 하라고 하셨지만, 재수는 하지 않았고 법학 관련 수업은 전혀 수강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 졸업 무렵 막상 ‘진로를 어떻게 할까’하고 고민했지만 딱히 꼭 해야겠다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소원이라도 들어드리겠다고 행정고시를 보고 공무원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민법을 공부해 보니 재미있고 내 적성에도 맞는 공부였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법학을 멀리했는데 나중에는 법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게 됐다. 부모님이 내게 거는 기대가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시킨 것도 부모님의 기대였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니 깨닫게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출산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2%가 ‘자녀가 없어도 무관하다’고 답했다. 또한 출산·육아하면 ‘경제적 부담’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자녀를 양육하려면 많은 부담과 비용이 든다. 그러나 자식은 그 비용을 넘어서는 큰 의미가 있다. 딸을 많이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는 투병 중 나를 기다리시다 내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돌아가셨다.

많이 슬펐지만, 그때 내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아, 나야말로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살다 가신 흔적이구나’하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예술품을 남기고 과학자나 발명가는 과학이론과 발명품을 남기지만, 필부필녀가 이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은 바로 그 자식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한한 존재다. 그러나 자기 유전자(DNA)를 물려받은 자식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계속 살아 있다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