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기기의 ‘쌀’이라고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몸값이 치솟고 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열풍으로 수요가 급증하며 품귀 현상이 장기화해서다. 삼성전기, 무라타, 다이요유덴 등 글로벌 MLCC ‘톱3’는 최근 나란히 가격을 인상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설비 투자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MLCC 공급난을 틈타 신흥 강자인 중국 업체가 중저가 범용 시장을 장악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AI 열풍에 MLCC 가격 급등
31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에 본사가 있는 세계 3위 MLCC 업체 다이요유덴은 오는 9월부터 출하하는 MLCC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서한을 최근 고객사에 보냈다.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 가격 인상이다. 구체적인 인상폭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이요유덴은 “지난해부터 자재비와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비용 절감을 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세계 시장에서 40% 점유율을 차지한 1위 무라타는 지난 3월 MLCC 가격을 올렸다. 시장 동향을 지켜보던 삼성전기도 1일부터 출하하는 MLCC 전 품목의 가격을 30% 인상하기로 했다.
MLCC는 전자 제품에서 ‘댐’ 역할을 한다. 전기를 저장한 뒤 필요한 곳에 안정적으로 공급해 반도체가 원활하게 동작하도록 돕는 부품이다. MLCC는 데이터센터에 있는 서버에도 들어간다. 특히 연산량이 많은 AI 서버에서 MLCC 사용량이 늘어난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고전력 반도체가 24시간 가동되는 만큼 전기를 안정적으로 분배해야 하는 구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전용 서버는 일반 클라우드용 서버보다 열 배 이상 많은 고용량 MLCC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고용량 MLCC 납기 7개월전자업계에서는 MLCC 가격 인상은 고사하고 MLCC 물량 확보 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퓨처일렉트로닉스에 따르면 7월 기준 무라타의 1마이크로패럿(㎌) 이상 MLCC 납기는 최장 30주에 달한다. 6월만 하더라도 24주였는데 한 달 새 납기가 6주나 길어졌다.
MLCC 회사들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설비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기는 4월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무라타도 4월 “MLCC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당분간 공급 부족 사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데다 MLCC를 생산하는 업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MLCC 점유율의 70%가량을 차지한 3개 업체가 설비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더라도 생산량을 단기에 늘리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당분간 MLCC 빅3가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MLCC 공급난이 중국 업체의 덩치를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대표 기업 삼환그룹은 7월 홍콩 증시 상장으로 71억6000만홍콩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 자금을 조달해 태국과 독일 신공장 건설에 나선다. 중국 풍화고과는 2020년부터 3단계로 추진한 75억위안(약 1조60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마치고, MLCC 월 생산능력을 삼성전기 절반 수준인 500억 개로 확대했다.
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