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락 칼럼] 무한 스크롤보다 더 무서운 것

입력 2026-07-31 00:20
스마트폰에선 스와이핑업(swiping up), PC에선 스크롤링다운(scrolling down).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등 SNS에서 영혼 없이 화면을 무한 반복해 끌어 올린다. 관심 가는 영상이나 사진이 나오면 클릭해서 살짝 본 뒤 또다시 화면을 바꾼다. 끊임없이 콘텐츠를 쏟아내는 ‘무한 스크롤’이다.

이 기술은 미국 웹디자이너 아자 래스킨이 개발했다. 이용자가 다음 페이지를 보기 위해 계속 클릭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선의로 시작한 기술이 사람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도구로 변질했고,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까지 더해져 청소년 SNS 중독의 주범이 됐다. 래스킨은 “인류의 시간을 갉아먹는 괴물을 풀어놨다”고 후회했으나 이미 멈출 수 없는 톱니바퀴가 된 뒤였다.

청소년 SNS 중독은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충동 조절이 쉽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소셜미디어 감옥에 빠져 수면 부족, 집중력 저하, 우울감 등을 호소하고 있다. 호주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계정 보유를 금지했다. 프랑스도 최근 15세 미만의 SNS 이용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영국은 18세 이하 사용자에게는 무한 스크롤 기능을 중간에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캐나다, 브라질 등도 비슷한 규제에 나섰다.

소셜미디어보다 더 치명적 존재도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다.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AI는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AI를 쓰는 학생들은 숙제를 하거나 탐구할 때 스스로 고민하지 않는다. 수학 문제도 사진으로 찍어 금방 답을 얻고, 외국어 해석도 AI에 맡긴다. 문제 풀이는 맥락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인지적 과정마저 건너뛴다.

스스로 질문하고 머릿속에서 씨름하는 ‘사고 근육’을 키울 기회는 없다. 순식간에 쏟아내는 답만 얻으며 조급증이 커진다. 걷고 뛰며 근육을 길러야 할 시기에 자동차부터 타는 것과 같다. 이해력과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저서 <디스킬(deskill) 제너레이션>에서 인류의 지적 역량이 퇴보하는 ‘탈숙련 세대’ 출현을 우려했다.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닥칠 미래는 상상보다 더 불행할 수 있다.

노르웨이가 다음달부터 초교 1~7학년(6~13세) 학생의 생성형 AI 사용을 금지한다고 한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읽기와 쓰기, 수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AI 사용은 어린 학생들이 교육 과정의 중요한 단계를 건너뛸 위험을 키웁니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의 말이다.

우리도 청소년의 AI 사용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뇌와 인지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유소년기에는 독서와 글쓰기, 토론을 통해 ‘생각의 틀’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AI 교육은 기초 지식과 사고력이 단련된 이후부터 제한적이고 단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언제 아들에게 AI를 쓰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고 “당분간은 아니다”고 답했다. 오픈AI는 챗GPT가 13세 미만 어린이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며 13~18세 청소년은 반드시 부모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AI에 정복되도록 놔둬선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게 기성세대의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