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손기술 3초 만에 다운로드”…노하우 올리고 평생 저작권료 번다? [피지컬 AI 핵심 밸류체인]

입력 2026-08-09 06:19
[피지컬 AI 핵심 밸류체인 : 가상훈련장 및 데이터]


“성수동 구두 골목 사장님 가슴에 보디캠을 달아 작업 데이터를 얻고 정부가 이를 쌀 수매하듯 사들이자는 겁니다. 모아진 데이터는 기업과 연구소가 자유롭게 쓰게 해 데이터 표준을 세우고 국민에겐 추가 수입을 주는 것이죠.”

지난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 이재명 대통령과 AI·반도체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 보고회에서 휴머노이드 기업 에이로봇의 엄윤설 대표가 이 같은 제안을 던졌다. 엄 대표는 실제 작업 현장에서 수집되는 원시 데이터(Raw Data)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국민이 직접 수집한 데이터를 정부가 마치 쌀을 사들이듯 구매하는 ‘AI 데이터 수매’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자영업자나 숙련공이 보디캠 등을 활용해 작업 동작 데이터를 정부에 제공하면 이를 수매해 표준화된 통합 데이터센터에 구축하고 로봇 기업과 연구기관에 개방하자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 역시 “매우 훌륭하고 재미있는 의견”이라며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제4의 생산 요소 ‘토큰’현장 데이터의 수집과 표준화는 피지컬 AI 시대를 열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으로 꼽힌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막대한 양의 물리적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는 데는 시간적·비용적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피지컬 AI는 생성형 AI나 에이전틱 AI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데이터를 요구한다”며 “30초짜리 모션 데이터를 모으는 데 20억 토큰, 책으로 치면 1만5000권 분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의 뇌와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은 대뇌(AI 데이터센터)와 소뇌(에지 컴퓨팅 디바이스)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을 예로 들면, 차량에 달린 7개의 카메라에서 초당 36프레임, 500만 화소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바퀴의 운동학 정보와 관성측정장치(IMU) 데이터까지 합산하면 불과 30초짜리 자율주행 모션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20억 토큰이 소요된다. 이는 두꺼운 소설책 1만5000권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데이터량이다.

하물며 손가락 마디마다 관절 자유도(DoF)와 토크 제어가 들어가는 10억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 세계에 뿌려진다면 그들이 뿜어내는 데이터의 양은 기존 반도체와 통신 인프라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이 거대한 데이터의 입출력 과정에서 핵심 경제 단위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모션 토큰(Motion Token)’이다. 토큰은 AI가 정보를 이해하거나 생성하는 최소 단위를 의미한다. 사람이 AI 모델을 이용할 때, AI 에이전트가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할 때, 피지컬 AI가 행동할 때도 핵심 소비 단위는 토큰이 쓰인다.

전통 경제학에서 생산의 3대 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고태봉 본부장은 피지컬 AI가 주도하는 미래 산업 현장에서는 ‘토큰(Token)’이 제4의 생산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2020년부터 중국은 전통적인 생산 3요소인 토지·노동·자본 및 기술에 이어 ‘데이터’를 ‘제5의 생산 요소’로 세계 최초로 공식 지정했다. 데이터의 소유권, 유통, 수익 배분, 보안 거버넌스를 다루는 ‘데이터 기초 제도’를 마련했으며, 2024년 1월부터 기업이 보유한 고품질 데이터 및 관련 권리를 회계 장부상 ‘무형자산’ 또는 ‘재고자산’으로 공식 계상하도록 했다.

모션 토큰은 인간 장인이 몸으로 터득한 숙련된 노하우(암묵지)를 로봇이 즉시 다운로드해 실행할 수 있도록 규격화·표준화한 ‘물리 동작 데이터 패키지’를 의미한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최고 장인의 용접 기술, HD현대중공업 장인의 후판 용접 노하우, 세계 1등 바리스타의 커피 압착 및 추출 핸들링, 200가지 한식 식자재를 디테일하게 다루는 셰프의 손기술 등 예컨대 이러한 숙련 기술을 전수받으려면 수년의 세월과 직접적인 훈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피지컬 AI 시대에는 이 암묵지들이 모션 토큰 형태로 변환된다. 소비자가 로봇을 구매한 후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에서 ‘바리스타 모션 토큰’이나 ‘농업 병충해 방제 모션 토큰’을 내려받아 로봇의 소뇌(칩)에 이식하는 순간 그 로봇은 백전노장 장인이자 숙련공으로 즉시 진화한다는 개념이다.

문제는 이 모션 토큰의 원자재가 되는 현장 데이터(Raw Data)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이다. 텍스트 데이터는 인류가 이미 웹에 쌓아둔 수많은 문헌을 크롤링하면 그만이었지만 인간의 정교한 물리적 행위 데이터는 모은 적도, 모을 수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현장의 반발을 잠재우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핵심 메커니즘이 바로 ‘토큰 거래소(Token Exchange)’와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y)’다.

AI 데이터 수매 방식이 일회성에 그친다면, 토큰 거래소는 저작권 개념에 가깝다.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가 음원을 만들어 올리면 소비자가 노래를 스트리밍할 때마다 저작권료가 정산되어 들어오는 방식이다.

자신이 토큰 거래소에 올린 모션 토큰이 다운로드될 때마다 평생 저작권료 형태의 보상이 주어진다면 자발적으로 모션 캡처 글러브와 슈트를 착용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데이터화해 업로드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란 얘기다. 가상 공간서 가동되는 ‘무한 데이터 공장’미국은 세계 최고의 AI 모델 알고리즘, 반도체,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정교한 모션 데이터를 수집할 ‘제조 현장(공장)’이 부족하다. 테슬라나 엔비디아의 핵심 인력들이 글로벌 공장이 몰려 있는 지역에 끊임없이 공을 들이는 이유도 이 물리 데이터의 보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반면 대한민국은 모션 토큰 이코노미를 선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 조선, 반도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10만 명 규모의 대형 급식소, 밀집된 군대 조직이 있다. 쇠젓가락 문화에서 기인한 정교한 손재주와 높은 작업 디테일도 우수하다.

고태봉 본부장은 “한국이 가장 좋은 점은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공장에 있는 숙련된 장인의 동작을 로봇으로 옮기고 실제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게 대한민국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리 현장의 암묵지가 훌륭하고 토큰 거래소가 활성화된다 한들 인간이 현실 세계에서 일일이 몸으로 채집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과 속도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게다가 실제 로봇을 실물 환경에 직접 투입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학습시키는 방식은 장비 파손과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린다. 미국이 겪는 ‘제조 현장의 부재’라는 약점과 한국이 직면한 ‘현실 수집의 속도 한계’를 한 번에 깨부수는 핵심 열쇠가 바로 ‘가상 훈련장(Simulation Platform)’이다.

가상 훈련장은 실제 로봇을 파손시킬 위험 없이 정교하게 구현된 디지털트윈(가상 공간) 안에서 수억 시간 분량의 동작 학습을 단시간에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시뮬레이터 환경이다. 현실 세계 제조 현장에서 채집된 단 1초의 숙련공 동작이 가상 훈련장에 입력되는 순간 시뮬레이터는 중력·마찰력·장애물 등 수많은 물리 환경 변수를 적용해 이를 수십만 시간 분량의 정교한 합성 데이터로 뻥튀기해낸다. 현실 세계의 암묵지 데이터와 가상 세계의 시뮬레이션 기술이 결합해 비로소 폭발적인 ‘모션 토큰’ 생산 라인이 완성되는 셈이다.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프리지던스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 시뮬레이터 시장 규모는 2025년 8억2000만달러에서 2026년 9억3640만달러 규모로 가파르게 성장해 2035년에는 약 30억9368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CAGR)만 14.2%에 육박하는 고성장 산업이다.


사진=엔비디아 아이작 랩

이 거대한 가상 데이터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대표적인 주자가 엔비디아의 ‘아이작 심(Isaac Sim)’이다. 쉽게 말해 로봇을 위한 ‘초정밀 가상 세계 종합 훈련장’이다. 공장 설계 도면이나 현장에서 찍은 영상 데이터를 집어넣기만 하면 아이작 심이 이를 가상 공간 속에 똑같이 복제한다. 그리고 중력이나 마찰력 같은 현실의 물리 법칙을 그대로 적용한 뒤 가상 로봇을 투입해 무한히 훈련시키는 구조다. 여기에 거대 가상 모델인 ‘코스모스(NVIDIA Cosmos)’까지 결합하면서 현실에서는 몇 년이 걸릴 로봇 학습을 가상 공간에서 단 며칠 만에 끝내버리는 ‘무한 데이터 생산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이 밖에 테슬라는 자체 기가팩토리 공장을 가상 공간에 그대로 복제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밀폐 훈련시키고 있으며 구글(딥마인드)은 정밀 물리 엔진인 ‘뮤조코(MuJoCo)’를 통해 로봇의 미세한 손가락 감각을 가상에서 단련시키고 있다. 메타 역시 가정 환경을 복제한 ‘하비타트(Habitat)’를 통해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서비스 로봇의 가상 데이터베이스를 쌓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