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과 업종별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하위 10~25%인 상장사를 ‘주가 누르기 기업’으로 보고 상속·증여 때 세 부담을 높일 방침이다. PBR 0.8배 이하 상장사를 일률적으로 주가 누르기 기업으로 보는 여당 안보다 상당히 완화된 방안이다. 상장사 200곳 이상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이 같은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편 방안을 세제개편안에 담기로 했다. 현행법은 상속일이나 증여일 전후 2개월간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상속재산의 가치를 평가한다. 주가가 낮을수록 대주주의 상속·증여세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경영권 승계를 앞둔 최대주주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기업설명회(IR) 등 주가 부양에 소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정부 개편안은 시장과 업종별 PBR을 기준으로 저평가 기업을 가려낸 뒤 이 기업 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회사 가치를 평균 주가 대신 순자산가치 등을 반영해 산출한다.
과세 대상 선정에는 금융당국이 오는 11월 도입하는 ‘저PBR 기업 공표제도’ 기준을 일부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PBR이 3년 연속 유가증권시장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시장 업종별 하위 10%에 머문 기업 명단을 공개할 계획이다. 재경부도 시장과 업종, 낮은 PBR 지속 기간 등을 반영해 주가 누르기 기업을 추려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8일 기준 우선주와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등을 제외한 상장사는 2517곳이다. 상장사 평균 PBR은 1.8배다. PBR 하위 10%인 252개사의 평균 PBR은 0.21배, 하위 25%인 630개사는 0.30배다.
실제 과세 대상은 PBR이 0.2~0.3배 안팎으로 낮으면서 같은 업종 내에서도 장기간 저평가된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PBR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과세하지 않고 업종 내에서 상대적인 순위와 저평가 지속 기간 등을 함께 따지겠다는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PBR 0.8배 미만 상장사를 일률적으로 주가 누르기 기업으로 보고 상속·증여세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의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 세제개편안에도 이 기준을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철강, 화학 등 설비자산 비중이 큰 장치산업과 업황이 부진한 기업은 구조적으로 PBR이 낮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정부가 시장·업종별 상대평가 방식으로 방향을 튼 배경이다.
다만 PBR을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거래소에서 형성된 주가 대신 세법상 별도의 평가액을 적용하면 정부가 주식시장의 가격 형성 기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PBR의 원인이 대주주의 주가 누르기인지, 낮은 성장성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도 허점으로 지적된다. CJ제일제당 대표를 지낸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대주주가 주가를 끌어내린 행위는 자본시장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