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는 28일 기록적인 폭락장을 맞았다. 코스피 지수는 장중 6000선을 이탈했고 코스닥 지수도 700선이 깨졌다.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서킷브레이커가 일제히 터졌고 코스피 기준 하락폭 역대 2위, 하락률 역대 4위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가 한 달 사이 네 차례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의 극심한 변동성에 휩싸이면서 시장 안전장치의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13~15% 급락인공지능(AI) 기반 투자정보 서비스 에픽AI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0.84% 내린 6023.66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5.26% 내린 6400.27에 출발한 뒤 낙폭을 빠르게 키웠다.
장 초반 코스피200 선물가격이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하락하면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오전 10시13분 지수가 6213.51까지 밀리며 전 거래일 대비 8% 이상 하락하자 서킷브레이커도 발동됐다. 이후에도 지수는 낙폭을 줄이지 못한 채, 장 중 한때 5992.91까지 밀렸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6000선을 밑돈 것은 지난 2월24일 이후 처음이다.
수급별로는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세가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4조9914억원, 기관은 6331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개인은 4조3305억원을 순매수하며 저가 매수에 나섰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도 대부분 급락했다. 삼성전자는 13.39%, SK하이닉스는 14.65% 하락했으며 SK스퀘어(-15.60%), 삼성전기(-15.92%), 현대차(-9.68%), LG에너지솔루션(-5.71%)도 큰 폭의 약세를 보였다.
코스닥도 급락을 면치못했다.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7.72% 내린 705.85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742.13으로 출발한 뒤 낙폭을 확대, 매도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잇달아 발동됐다. 장중에는 700선을 내주기도 했는데 코스닥이 종가 기준 700선을 밑돈 것은 지난해 4월16일 이후 처음이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기관만 순매도에 나섰다. 기관은 1345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828억원, 514억원을 순매수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알테오젠은 4.97%, 에코프로비엠은 7.87%, 에코프로는 9.80%, 레인보우로보틱스는 10.20% 각각 하락했다. 주성엔지니어링(-14.08%)과 리노공업(-11.75%)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 기업의 심자외선(DUV·deep ultraviolet) 노광장비 개발 소식이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증설 및 글로벌 메모리 경쟁 심화 우려를 자극했다"면서 "아직 구체적 기업 이름, 성능, 양산 일정 등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미 반도체주의 내러티브가 훼손된 상태 속에서 이 같은 뉴스조차 투자심리를 냉각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전까지 지지선 역할을 했던 120일선을 오늘 갭 하락하면서 하향 이탈했다"면서 "기술적으로 차트가 훼손됐다는 심리적인 부담도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 중반 이후 예정된 실적 이벤트에 대한 경계심리도 더해졌다. 한 연구원은 "이달 초 삼성전자, 지난주 알파벳 모두 호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연이은 주가 급락 경험했다"면서 "이는 금주 예정된 SK하이닉스, 미국 M7 실적 경계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변동성 완화장치 한계…불안만 키웠다시장에서는 7월 한 달 사이 네 차례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 매매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 완화장치가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거래소는 코스피 혹은 코스닥 지수가 전일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황이 1분간 지속될 경우 '1단계'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한다.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 20분간 매매거래가 멈추며, 취소호가를 제외한 호가접수도 중단된다. 매매거래가 재개된 이후에도 10분간 단일가 매매가 이뤄진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불안감에 사로잡혀 무작정 투매에 동참하지 않고 냉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인 셈이다.
지수가 15% 이상 하락하고 1단계 서킷브레이커 발동 시점보다 1% 이상 큰 낙폭을 보이는 상황이 1분 이상 지속되면 2단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다시 한 차례 매매거래가 20분간 중단된다. 낙폭이 전일 대비 20%를 넘는 등 조건이 갖춰질 경우에는 아예 장을 즉각 종료하는 3단계 서킷브레이커도 가동될 수 있다.
워낙 강력한 장치인 까닭에 1998년 첫 도입 이후 작년까지 20여년간 발동 횟수는 18건(코스피 8건, 코스닥 10건)에 불과하다. 2015년 도입된 2단계, 3단계 서킷브레이커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발동된 적이 없다. 그러나 올해는 28일 현재 벌써 8차례(코스피 6건, 코스닥 2건)나 1단계 서킷브레이커가 작동했다.
특히 글로벌 반도체 조정으로 코스피가 급락한 7월 들어서는 유가증권시장 세 차례(7·13·28일)와, 코스닥 시장 한 차례(28일)까지 한 달새 네번이나 서킷브레이커가 걸렸다. 특히 이날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나란히 1단계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지만 코스피와 코스닥의 급락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매수·매도 사이드카는 같은 기간 무려 23차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코스피200선물 지수가 5% 이상 등락하거나, 코스닥150 선물 및 현물 가격이 각각 6%와 3% 이상 등락한 상황이 1분 이상 지속되면 프로그램 매수 혹은 매도 호가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장치로 상대적으로 발동 기준이 낮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처럼 변동성 완화장치가 매일 같이 울리는 데도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복되는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 발동 자체가 투자자들의 학습된 공포로 작용하며 변동성을 재생산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재 시장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이번 주부터 예정된 SK하이닉스 및 미국 '매그니피센트7'(M7) 실적이 시장의 우려를 완화해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