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뷰티 본고장' 유럽 뚫은 K화장품…수출액 북미 제쳤다

입력 2026-07-27 15:30
수정 2026-07-27 15:36
한국 화장품이 ‘뷰티 본고장’ 유럽 시장을 뚫었다. 올해 상반기 국내 화장품 수출이 7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유럽 수출액이 처음으로 북미를 넘어섰다. 까다로운 인증과 국가별로 쪼개진 유통망 탓에 진입 장벽이 높은 시장으로 꼽혀온 유럽이 K뷰티의 두 번째 수출 시장으로 부상한 것이다.

27일 한국경제신문이 관세청 수출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 화장품류 수출액은 15억2459만달러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북미 수출액(14억9079만달러)보다 약 3380만달러 많았다. 상반기 기준으로 유럽이 북미를 제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륙별로는 아시아가 31억4301만달러로 1위를 유지했다. 유럽과 북미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전체 화장품 수출액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2.9%로 북미(22.4%)보다 0.5%포인트 높았다.
상반기 유럽 수출, 북미 넘어서그동안 K뷰티의 핵심 수출 시장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미국이었다. 유럽은 프랑스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전통적인 화장품 강국이 밀집한 데다 국가별 언어와 유통 구조, 소비자 취향이 달라 국내 업체가 공략하기 까다로운 시장으로 꼽혀왔다.

수출 물량으로 보면 북미가 여전히 유럽을 크게 앞선다. 올 상반기 북미 화장품 수출량은 약 7만717t으로 유럽(약 4만9606t)보다 42.6% 많았다. 북미에 더 많은 물량을 보내고도 수출액은 유럽이 더 컸던 것이다. 전체 수출액을 수출 중량으로 나눈 ㎏당 평균 수출액을 따져보면 유럽이 약 30.7달러로 북미(약 21.1달러)보다 46% 높았다. 유럽에서는 기초화장품과 기능성 스킨케어 등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의 수출 비중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수출을 주도한 품목은 기초화장품이다. 올 상반기 유럽 기초화장품 수출액은 7억3397만달러로 전체 유럽 화장품 수출의 48.1%를 차지했다. 토너와 세럼, 앰플, 크림, 마스크팩 등 한국 업체가 강점을 지닌 스킨케어 제품이 현지 소비자를 파고든 것으로 분석된다.

세안용 제품 등이 포함된 기타 화장품류 수출액도 6억227만달러에 달했다. 기초화장품과 기타 화장품류를 합친 비중은 87%를 웃돈다. 색조화장품은 1억3626만달러, 기타 헤어제품은 2442만달러, 샴푸는 1981만달러어치가 유럽으로 수출됐다. 업계에서는 K뷰티의 인기가 스킨케어 일부 제품에 그치지 않고 색조와 헤어케어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과거 마스크팩이나 저가 기초화장품 위주였던 수출 품목도 기능성 세럼과 클렌징 제품, 색조 제품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뷰티 본고장’의 높은 벽 넘은 K뷰티유럽은 로레알과 샤넬, 디올 등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이 탄생한 뷰티 산업의 본고장으로 각국에 오랜 역사와 유통망을 갖춘 화장품 브랜드가 촘촘히 자리 잡고 있어 해외 신생 브랜드가 파고들기 쉽지 않은 시장으로 꼽힌다. 소비자들도 현지 약국 화장품이나 자국 브랜드의 안전성·품질에 대한 신뢰가 높아 인지도가 낮은 해외 브랜드에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다.

주요 유통망 역시 검증된 판매 실적과 브랜드 인지도, 현지 규제 대응 능력을 중시해 신규 브랜드가 매대에 진입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미국 비중이 큰 북미 지역처럼 하나의 대형 시장을 겨냥하는 방식도 통하지 않는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등 국가별로 제품과 가격, 유통 전략을 따로 짜야 한다. 이미 현지 브랜드가 충성 고객을 선점한 유럽에서 한국 인디 브랜드가 독립된 ‘K뷰티’ 상품군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이번 수출액 역전의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수많은 장벽에도 유럽 수출이 늘어난 배경으로는 국내 인디 화장품 브랜드의 폭발적인 성장이 꼽힌다. 조선미녀와 아누아, 스킨1004, 메디큐브, 믹순 등은 대규모 광고보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용해 제품 성분과 사용법을 알리는 방식으로 현지 인지도를 높였다. 쌀과 인삼, 어성초, 병풀 등 유럽 소비자에게 낯설지만 차별화된 원료를 앞세우고, 자외선차단제와 토너패드, 앰플처럼 사용 목적이 명확한 제품을 집중적으로 알렸다.

한국식 피부 관리법 자체가 하나의 소비문화로 확산한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 수분감이 가벼운 토너와 에센스, 앰플 등을 단계별로 덧바르는 ‘레이어링’과 촉촉하고 윤기 나는 피부를 뜻하는 ‘글라스 스킨’이 대표적이다. 개별 소비자들이 여러 제품을 하나의 관리 순서로 묶어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구매 전환율이 높다. 빠른 제품 개발 속도와 가격 경쟁력도 강점이다. 국내 인디 브랜드들은 나이아신아마이드와 세라마이드, 펩타이드, PDRN 등 소비자의 관심이 높은 성분을 적용한 신제품을 짧은 주기로 선보이고 있다.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기능성 제품을 내놓으면서 젊은 소비자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
SNS서 뜬 인디 브랜드…현지 주류 유통망 진입온라인에서 시작된 인기는 유럽의 대형 뷰티 유통망 입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 세포라는 아누아와 조선미녀, 메디큐브, 스킨1004, 티르티르 등을 모은 별도의 ‘K뷰티 허브’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 최대 화장품 유통업체 중 하나인 더글러스도 조선미녀와 아누아, 스킨1004, 코스알엑스 등 한국 브랜드를 ‘코리안 스킨케어’ 카테고리로 묶어 판매한다. 영국 온라인 뷰티 플랫폼 룩판타스틱 역시 조선미녀와 아누아, 메디큐브, 라운드랩 등을 별도 K뷰티관에서 취급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판매 실적을 쌓은 한국 브랜드들이 세포라와 더글러스 같은 유럽 주류 유통망으로 들어가면서 K뷰티가 일부 마니아층의 직구 상품을 넘어 현지 소비자의 일상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유럽이 북미를 대체했다기보다 K뷰티 수출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성장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북미 수출액 역시 15억달러에 육박한 만큼 북미 시장이 위축됐다기보다 유럽의 성장세가 더 가팔랐다는 것이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글로벌 화장품 기업과 브랜드가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라며 “유럽에서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는 것은 K뷰티가 가격 경쟁력을 넘어 제품력과 브랜드 경쟁력까지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