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추락·원화 질주…뚜렷해진 디커플링

입력 2026-07-26 18:00
주요국 통화 가운데 최약체이던 원화 가치가 급반등(환율은 급락)했다. 지난 2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7원 내린 1458.5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 1450원대로 떨어진 것은 지난 5월 7일(1456원) 후 2개월여 만이다.

원·엔 환율도 100엔당 895.44원으로 1년8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달 들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8% 상승한 데 비해 엔화 가치는 0.9% 하락했다. 원화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던 엔화와의 탈동조화(디커플링)가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화가치 상승폭은 주요국 통화 1위…엔화는 40년 만에 최저
하이닉스ADR로 256억弗 유입…외국인 韓주식 순매수세 전환 수년간 쌍둥이처럼 움직이던 원화와 엔화가 최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동 전쟁과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에 따른 고유가·강달러의 대외 변수를 맞아 원화는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큰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엔화는 약세를 거듭하고 있다. 국내 외환시장의 수급 변화와 두 나라의 경제 체력 차이가 원·엔화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달러 매도 물량 쏟아지는 한국 시장26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이후 24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84% 상승했다. 유로화(-0.11%), 대만달러(-1.51%) 등 주요국 통화 가운데 절상률이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엔화 가치는 0.93% 하락했다.


원화와 엔화는 두 나라의 중동 석유 의존도와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 가계 자금의 해외 유출, 미국과의 금리 차 등 비슷한 경제 여건으로 최근 수년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의 1년 상관계수는 0.9에 달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동조화 현상이 강하다는 의미다.

24일 기준 두 환율의 한 달간 상관계수는 -0.6으로 반전했다. 최근 3주 새 원·달러 환율이 100원 가까이 하락한 반면(원화 강세) 엔·달러 환율은 4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도 100엔당 895.44원까지 하락하며 약 1년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두 통화의 탈동조화가 두드러진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외환시장 수급 변화로 원화가 강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으로 조달한 256억달러가 국내 외환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시장 참가자의 심리를 단숨에 바꿔놨다는 분석이다. 환율이 단기 고점이라는 인식이 확산하자 다른 수출기업도 서둘러 달러 추격 매도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진정된 것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했다. 올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149조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원화 약세를 이끈 외국인은 최근 2주(13~24일) 동안 2조5460억원어치 순매수로 돌아섰다. A은행 외환딜러는 “SK하이닉스의 달러 매도 기대가 이어지면서 환율이 하락할 때 큰 폭으로 떨어지고, 오를 때 상승폭이 제한되는 모습”이라며 “한 달 전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며 달러 쇼트(매도) 전략도 유효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韓·日 경제 펀더멘털도 환율에 반영한국과 일본의 경제 체력 차이와 통화정책 방향 또한 두 통화의 흐름을 갈랐다. 반도체 호황으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3%를 훌쩍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시장 참가자는 한국은행이 최소 두세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일본의 2026년 경제성장률을 0.6%로 지난 4월(0.7%)보다 하향 조정했다. 일본 정부의 재정 확장 기조 속에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속도가 더뎌질 것이란 관측도 엔화 가치를 짓누르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각각 1.0%포인트와 2.5%포인트인 한·미, 미·일 간 금리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일본은행의 더딘 금리 인상 속도 때문에 엔 캐리 트레이드를 통한 자본 유출이 여전히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엔화 디커플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코스피지수가 전고점 수준으로 반등하지 않는 이상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가 과거처럼 커질 가능성이 낮고, SK하이닉스의 달러 매도 물량이 당분간 원화 강세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SK하이닉스 물량이 대부분 소화되는 다음달 이후에는 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달러 저가 매수 수요가 유입되면 원·달러 환율이 1450원 안팎에서 공방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엔화의 흐름은 중동 정세와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여부가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미국의 긴축 우려가 커지면 달러가 더욱 강세를 나타내며 엔화 가치에 부담을 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