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오자 여의도 증권가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최 회장의 분할금 조달 과정에서 SK그룹의 지배구조 및 주주환원 전략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4일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9440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앞서 대법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뇌물로 규정하며 파기환송을 결정했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급 액수를 고려해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분할 대상으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건은 944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현금으로 융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올 2분기 말 기준 최 회장의 전체 주식평가액은 10조8259억원에 달하는데, 이 중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SK㈜ 보통주 지분 17.90%(약 8조5249억원)다. 이를 매각하면 경영권 훼손으로 직결되는 만큼 직접 매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시장의 중론이다. SK스퀘어, SK디스커버리 등 다른 상장사 보유 지분 가치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증권가는 지배구조를 흔들지 않고 현금을 마련할 가장 현실적인 카드로 ‘우량 자회사의 배당 확대’를 꼽는다. 하나증권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SK텔레콤을 최선호주로 제시하며 “SK그룹의 지배구조 관련 문제를 줄일 방안으로는 우량 자회사 배당 확대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진단했다. 배당금 지급 능력이 뛰어난 SK텔레콤이 배당 증대에 나서고, 배당금이 그룹 총수에게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이 총수익스와프(TRS) 거래를 통해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SK실트론 지분 29.4%를 매각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SK㈜의 지난해 배당총액이 4407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의 지분율로는 배당을 대규모로 늘려도 9440억원을 모두 조달하기 어렵다는 논리에서다. SK그룹은 지난해 SK실트론 매각을 선언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두산그룹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이 협상에서 최 회장이 실질적으로 보유한 개인 지분도 함께 정리될지는 불분명하다.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이날 오후 2시께 판결이 나오자 SK텔레콤 주가는 장중 5.33% 오른 10만4800원까지 급등했다. 반면 자금 조달의 우회적 압박을 받을 수 있는 SK㈜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3.82%, 8.34% 하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