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은 A씨는 소싯적부터 붙어 다닌 40년지기 친구인 B씨를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어 B씨의 부탁을 받고 그의 친형에게도 일자리를 내줬다. 오랜 우정이 고용관계로까지 이어졌지만, B씨 친형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A씨는 금전적 책임을 묻진 않았지만 B씨를 압박하기도 했고, 어느 순간 예전처럼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여긴 A씨는 몇 달간 B씨의 해고 사유를 모았다.'40년 지기' 사장, 안 하던 근태관리에 갈등 폭발25일 노동실무 연구모임 흥미로운연구소에 따르면 노동위원회에서는 앞서 친구 사이던 근로자와 사용자 간 다툼으로 발생한 징계사유의 경우 직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그러면서 근로자 측 주장에 따라 사용자 측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이들 간 갈등은 회사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B씨를 관리하면서 불거졌다. 그간 요구하지 않던 근태기록을 내도록 한 뒤 누락된 기록을 토대로 지각·결근을 문제 삼았다. B씨 업무에 대한 회계감사도 진행했다. 회사를 그만둔 직원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 의혹도 이때 불거졌다.
B씨도 가만있지 않았다. A씨의 조치를 부당한 지시라고 생각해 시말서를 내지 않았다. 표적감사라면서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동영상을 촬영하고, 내부 분쟁을 외부에 공개하는 내용의 공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회사는 이를 지시 불이행, 감사 방해, 월권행위 등의 징계사유로 삼았다.
A씨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 B씨를 해고했다. 26쪽짜리 징계의결서에 적힌 사유만 19건에 달했다. 없는 일을 꾸며냈다고 보기도 어려웠고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은 사유들로 가득했다. 이 중 몇 건만 인정된다 해도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될 수 있었다.
반면 B씨는 부당해고라며 맞섰다. A씨는 수년째 회사가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B씨에게 증거 조작과 관련 폐쇄회로(CC)TV 영상 삭제를 지시했는데 협조하지 않자 해고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 B씨는 A씨가 "사람 거두는 게 아니다, 그렇지?"라고 말한 대목도 부당해고 근거로 제시했다. A씨가 자신에게 베푼 은혜에 상응하는 충성을 요구했고 이를 따르지 않자 해고했다는 주장이다.
감사 당일 상황도 쟁점이 됐다. B씨는 회계감사를 방해하면서 동영상을 찍고 고성을 질렀다. 반면 A씨는 다른 사람을 통해 B씨를 속여 차에 태운 뒤 하차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B씨에게 욕설도 퍼부었다. 해고사유가 된 B씨 행동만 떼어놓고 보면 과격했지만 갈등을 키운 A씨 대응도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징계사유 무거워도 곧장 '적법해고' 성립되진 않아노동위는 회사가 제시한 19건 가운데 6건을 징계사유로 인정했다. 이 중 다수는 업무지시에 불복한 것으로 '중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B씨 손을 들어줬다. 다툼이 벌어진 경위를 모두 살피면 "해고의 사유가 이 사건 근로자의 비위행위에 기인한 것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B씨가 주장한 불법행위의 실재 여부와 별개로 해고 분쟁의 발단이 이를 둘러싼 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이다.
노동위는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과 '해고'라는 가장 무거운 처분이 정당한지를 각각 구분해 판단했다.
법원에선 이미 이와 유사한 사안에 관한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3년 1월 부당해고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에 불복해 회사 측이 낸 소송을 기각했다. 지시 불이행, 근태 불량, 불량한 언동 등을 징계사유로 인정하면서도 해당 비위가 근로자 책임만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원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개인적 관계가 먼저 형성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이들 사례를 종합하면 징계사유가 인정된다는 사실만으로 해고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비위의 내용·무게뿐 아니라 갈등이 시작된 계기, 사용자의 언행, 행위가 발생한 전후 사정도 징계 수위를 정할 때 함께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지인을 고용했다고 해서 별도 법리가 적용되는 건 아니다. 친분에 기대 업무상 권한·의무의 경계를 흐려 놓으면 오히려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함연경 노무법인 시선 공인노무사는 "근로자의 평소 소행, 근무성적, 징계 전력 등은 양정에 참작될 수 있어 징계사유 외의 사정은 사용자 측에서 끌어들이는 게 보통"이라며 "이 사건은 반대였다"고 설명했다.
함 노무사는 "근로자 측에서 사용자의 평소 말투, 성품, 근로자를 미워하게 된 계기 등 해고사유 외의 사정을 끌어들였고 잘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근로자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아 구제신청이 인용됐다"며 "특수한 사정은 구체적 사건에서 양정으로 반영될 수 있지만 지인 간 고용관계에 적용되는 특별한 법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용관계가 된 이상 특별한 사이라는 믿음은 양쪽에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