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고 핫하다…펄펄 끓는 뉴욕의 심장이 무대로 '헬스키친' [김수영의 스테이지&]

입력 2026-08-04 16:54
수정 2026-08-06 13:34

공연장에 들어서면 그루비한 알앤비와 힙합 비트가 관객을 맞이한다. 힙한 사운드에 몸을 맡기고 분위기를 예열하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는 1990년대 뉴욕 맨해튼의 광경이 펼쳐진다.

맨해튼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화려함의 대명사 격인 타임스퀘어. 그러나 무대는 전혀 다른 곳을 조명한다. 타임스퀘어에서 한 블록만 넘어가면 나오는 헬스키친. 라틴계, 흑인, 혼혈을 비롯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딸 앨리를 키우는 백인 여성 저지는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녀에게 헬스키친은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지역'일 뿐이었다. 이 불안한 마음은 앨리를 억압하기에 이른다. 잠깐의 외출도, 거리의 친구들도 모든 게 탐탁지 않다.

앨리는 그런 엄마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첫사랑 상대인 넉과의 관계마저 망치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어찌해야 할 줄 모르던 그 순간 같은 건물에 사는 미스 라이자 제인의 피아노 소리에 이끌렸다. 그렇게 건반 위에 손을 올렸고, 미스 라이자 제인은 인생의 스승이 됐다.

뮤지컬 '헬스키친'은 예술가들의 성지로 불렸던 맨해튼 플라자에 사는 소녀 앨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실제 1977년 개관한 맨해튼 플라자는 여러 배우, 댄서, 음악가, 작가 등이 모여 살며 예술가 공동체를 이뤘던 곳이다. 작품은 이곳에서 자랐던 팝스타 앨리샤 키스의 삶과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앨리샤 키스는 무려 13년의 세월을 쏟아부어 '헬스키친'을 완성했다. 그래미 어워드 통산 17회 수상자인 그는 '헬스키친'의 완성도를 높인 주역이다. 기존 앨리샤 키스의 수많은 명곡은 물론이고, 그가 직접 쓴 미공개 곡까지 음악적 커리어를 '헬스키친'에 집약했다.

음악과 퍼포먼스는 '헬스키친'의 가장 강력한 매력 포인트다. 막이 오르고 나오는 첫 넘버 '더 가스펠(The Gospel)'에서부터 이 작품의 방향성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앨리와 친구들이 한 데 모여 펼쳐내는 힘 있는 군무와 에너지는 '헬스키친' 전반에 흐르는 뜨거운 열정과 공동체 정신, 자유로움을 대변한다.

앨리샤 키스의 데뷔곡 '폴린(Fallin)'을 비롯해 '이프 아이 에인트 갓 유(If I Ain't Got You)', '노 원(No One)', '걸 온 파이어(Girl On Fire)' 등 히트곡이 넘버로 활용되지만, 음악을 단순 사용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앨리가 엄마 저지와 갈등을 겪고, 미스 라이자 제인에게 음악을 배우고, 첫사랑 넉과의 관계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화해와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각 장면에서 음악은 유연하게 편곡됐다. 끼워넣기식이 아닌, 서사에 맞춰 적재적소에 맞춤형으로 녹아들었다.

팝이 어색함 없이 서사를 이끌 수 있었던 데에는 작품의 콘셉트를 명확히 잡은 게 큰 역할을 했다. 거칠지만 순수하고 뜨거운 뉴욕의 이미지를 큰 줄기로 두어 음악도 이에 맞춰 옷을 바꿔 입었다. 심장을 쿵쿵 때리는 드럼 비트, 베이스의 울림은 객석 바닥을 타고 관객에게 진동을 전달했다. 댄스 앙상블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사운드까지도 청각적으로 강한 전율을 안긴다.

히트곡 중에서도 히트곡인 '이프 아이 에인트 갓 유'는 유일하게 영어 가사를 살렸다. 앨리가 아빠 데이비스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부르는 장면에서 삽입돼 어색함이라곤 전혀 없다. 오히려 원곡 가사를 살려 감동을 배로 살린 영리한 전략이다. 쥬크박스 뮤지컬의 신세계를 보여준다.


음악과 퍼포먼스만 훌륭한 게 아니다. 배경이 맨해튼 지역으로 고정된 상태임에도 몰입감 있는 무대 연출로 단조로움을 지웠다. 맨해튼 플라자의 각 층을 오가는 엘리베이터는 앨리가 세상 밖으로 향하는 통로임과 동시에 이웃인 예술가들 간의 연대와 공동체성을 보여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꿈, 사랑, 저항, 차별, 자유, 열정 등의 단어들은 음악과 춤이라는 매개를 타고 흘러 관객들의 마음에 성장의 씨앗을 심는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넘버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다. "뉴욕~"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한국인들에게도 아주 친숙하다. 뜨거운 꿈과 희망을 품고 이를 동력 삼아 나아가는 이들에게 단단한 위로를 전하는 엔딩이다.

'헬스키친'은 오는 11월 8일까지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앨리는 손승연·김수하·박지원이 연기한다. 저지 역에는 박혜나·최현선, 미스 라이자 제인 역에는 정영주·김영주, 데이비스 역에는 케이윌·테이가 캐스팅됐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