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산다…로펌들의 ‘합병 러시’[로펌 M&A 전쟁]

입력 2026-07-29 07:40
수정 2026-07-29 09:06
[커버스토리 : 로펌 M&A 전쟁]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대한민국 대형 로펌의 성장을 이끈 동력은 인수합병(M&A)이었다. 2000년대 초반 ‘규모의 경제’를 노린 1차 합병이 오늘날 ‘10대 로펌’을 구축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법률 시장에 최근 2차 합병 바람이 불고 있다. 대형 로펌의 과점 체제를 깨뜨리기 위해 중견 로펌들이 합병이라는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린, 법무법인 원과 민후 등 실력파 로펌들이 통합을 결정했다. 지난해 합병을 성사시킨 LKB와 평산은 법무법인 정세까지 추가로 품에 안기로 하며 세를 확장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전통의 강호 동인 역시 지속적으로 합병 의지를 피력하며 이 열풍에 가세하고 있다.

로펌들의 몸집 키우기와 구조 재편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현재 수많은 로펌들이 물밑에서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로펌들의 연이은 합병으로 대한민국 법률 시장의 지도도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법률 시장의 ‘전통 강자’와 ‘신흥 강자’가 합병을 결정하며 로펌업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법무법인 린이다. 두 로펌은 올해 4월 통합(M&A)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대륙아주는 송무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며 업계 10위권에서 경쟁 중인 대형 로펌이다. 2017년 설립된 린은 매년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는 강소 로펌이다. 기업 자문 쪽에서 맹활약하며 ‘다크호스’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각자의 강점이 뚜렷한 두 로펌은 서로의 한 지붕 아래에서 새 출발을 예고한 상태다. 현재 대륙아주와 린의 경영진이 만나 합병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시기가 언제가 될지 예상하긴 어렵지만 합병이 성사되면 로펌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두 로펌의 단순 합산 매출은 약 1400억원이다. 단숨에 업계 8위로 도약하게 된다.

국내 로펌 시장에서 중소·중견 로펌들의 인수합병(M&A)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경쟁 속에서 서로 힘을 합쳐 살아남겠다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변화된 기업 법률 수요와 시장 경쟁 심화를 뚫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합병은 2000년대 초반 국내 로펌들이 유용하게 활용했던 성장 전략이었다. 빠르게 커지던 국내 법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당시 수많은 로펌들이 합병을 선택해 덩치를 키워냈다. 광장·세종·화우·지평 등이 이런 방식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며 대형 로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약 20년 만에 또다시 로펌 업계에 합병 러시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뚜렷하다. 2000년대 초엔 변호사 수를 늘려 로펌의 몸집을 불리기 위한 합병이 주를 이뤘다. 최근에는 단순히 덩치를 키우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변호사 수도 중요하지만 서로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시너지’ 창출까지 고려해 합병을 진행하는 추세다.시너지에 초점 맞춘 ‘합병’대륙아주와 린의 합병도 서로의 강점이 달랐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대륙아주는 송무에, 린은 자문에 각각 장점을 보여왔다. 이규철 대륙아주 대표변호사도 린과의 합병에 대해 “단순한 외형 확대를 넘어 급변하는 산업 구조와 글로벌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종합 로펌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밝혔다. 향후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해 더욱 빠른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살림을 합치는 것은 두 로펌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에는 정통 기업 자문 및 송무 시장에서 활약해 온 법무법인 원이 합병 소식을 전하며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다. 상대는 법무법인 민후다. 원의 약점으로 지적돼왔던 IT·지식재산권(IP)·기술규제 분야에서 실력을 뽐내 온 강소 로펌이다. 두 로펌 역시 상호보완 효과를 앞세워 대형 로펌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오는 10월 1일을 통합 출범 날짜로 정했다. 원 관계자는 “현재 통합을 위한 작업에 고삐를 죄고 있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LKB평산도 빼놓을 수 없다. LKB평산은 법조계의 대표적인 ‘전관 중심’ 강소 로펌인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와 법무법인 평산이 지난해 합병하며 새롭게 출범했다. 두 로펌이 합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최근에 또 새로운 합병 계획을 알렸다. 기업 자문에 강점을 가진 정세와도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LKB평산 관계자는 “8월 전에 합병이 이뤄질 것”이라며 “현재 새로운 로펌명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형사 부문의 강자’로 불리는 법무법인 동인도 합병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5월 취임한 원창연 동인 신임 경영대표변호사가 취임 일성으로 ‘합병’을 외쳤다.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법무 강화가 목적이다. 원 대표변호사는 “동인의 기업 자문 분야 규모를 키우기 위해 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현재 여러 중소·중견 로펌들이 물밑에서 합병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대형 로펌까지 합병을 알아보고 다닌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 중견 로펌 관계자는 “로펌명을 밝힐 수는 없으나 대형 로펌 중 한 곳으로부터 합병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올해 들어 중소·중견 로펌들이 연이어 합병 결단을 내린 배경은 법률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분석이다. 로펌들의 주요 고객인 대기업들의 ‘대형 로펌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주된 원인은 법률 자문 수요의 변화다. 수년 전까진 M&A와 기업공개(IPO),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로펌들의 핵심 수익원이었다. 중소·중견 로펌들도 여기에 맞춰 전문성을 강화해왔다.

최근에는 달라졌다. 해당 분야의 자문이 크게 줄어든 대신 회생파산, 노동, 구조조정, 국제분쟁, 규제 대응, AI 관련한 자문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로 전해진다. 기술의 발전과 경기 불황의 장기화, 정권교체에 따라 정부의 기업 정책이 변화한 영향이다.

급변하는 법률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대형 로펌들은 기민하게 대응하며 여전히 고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내부에 포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재적소에 인재들을 배치하며 빠르게 조직에 변화를 줬다. 기업들의 법률 수요가 급증하거나 새 영역이 등장할 때마다 신속하게 ‘해결사’를 자처하는 전문센터 등을 신설하며 고객들을 그러모았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태평양, 세종, 율촌, 광장이 나란히 고른 성장을 하며 매출 4000억원을 돌파했다. 중소·중견 로펌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중소·중견 로펌들의 상황은 달랐다. 이들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시장이 커지는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수요가 급증하는 분야의 경우 새롭게 전문 인력을 영입하는 등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다 보니 대형 로펌만큼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대형 로펌들이 기업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을 바라보며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계속 커져 갔다.
“이대로 가면 다 망한다”위에는 대형 로펌이 있다면 아래에서는 정통 로펌의 문법을 파괴하며 등장한 신흥강자들이 중소·중견 로펌의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무법인 YK와 대륜과 같은 네트워크 펌이다. 전국 단위로 촘촘한 지사를 갖춘 이들은 한 해 광고비로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큰돈을 쓰며 수많은 법률 시장의 수요를 빨아들였다.

최근에는 공격적인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민사·형사 등 작은 사건만 주로 담당하며 성장한 이들은 그간 벌어들인 돈으로 대형 로펌 출신 등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큰돈이 되는 기업법무 강화에 주력하며 중소·중견 로펌들의 먹거리까지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중소·중견 로펌들 사이에서 자신들을 대형 로펌과 네트워크 로펌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중소·중견 로펌에 합병은 빠르게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고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됐다”고 진단했다.


합병을 결정한 로펌들의 목표는 하나같이 일치한다. 변호사 수를 확 늘려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처럼 모든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인재 영입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합병을 통한 네임 밸류 업그레이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한 변호사는 “요즘 젊은 변호사들은 조직의 크기나 간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규모 확대는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투자 부담도 낮출 수 있다. 특히 로펌들도 최근 AI를 적극 도입해 계약서 검토, 판례 검색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돈이 들어간다.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과 전문 인력 확보 등이 필요하다. 규모를 키움으로써 인건비 부담을 낮추고 자체 법률 데이터도 더욱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로펌 간의 합병이 언제나 성공이라는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빠르게 융합하지 못하면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특히 로펌 마다 변호사들에 대한 수익 배분 구조가 상이한데 이를 어떻게 잘 설계하느냐에 따라 합병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 큰 목 표를 갖고 합병했으나 통합된 조직 운영 방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다시 갈라선 로펌들도 많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