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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간 갈등 재발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22일(현지시간) 일본 엔화 가치가 4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 당국이 거듭 시장 개입 의지를 시사했음에도 전문가들은 달러-엔 환율이 165엔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엔화가 시장개입정도로는 지지되기 어려운 구조적 약세 상황에 놓였다는 진단이다.
22일, 일본 엔화가치가 또 다시 4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달러당 163.24엔까지 떨어졌다. 이 날 가타야마 사츠키 재무장관과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필요에 따라 적절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엔화가치는 달러당 163엔대에서 거래됐다. 시장이 당국의 효과적인 시장 개입이 어렵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유가 계속 오르면 달러당 165엔까지 갈 것" 전망<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이 날 블룸버그와 인터뷰한 SBI FX 트레이드의 마리토 우에다 사장은 "당국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일본 당국이 개입에 따르는 비용 때문에 실행이 어렵다는 점을 시장이 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당국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7일 사이에 엔화 가치 지지를 위해 11조 7300억엔(약 107조원)을 시장에 투입했지만 엔화 가치 부양에는 실패했다. 재정적자 확대, 국제유가상승, 일본은행의 뒤늦은 금리인상 등 모든 여건이 엔화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주에도 가타야마 재무장관이 투기꾼들에게 언제든 "결정적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있다고 경고했으나 이 발언후에도 엔화 약세에는 변동이 없었다.
호주국립은행(NAB)의 수석 외환 전략가인 로드리고 카트릴은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가 유가 상승을 통해 엔화의 약세를 가속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이 악화된다면, 달러-엔 환율이 165까지 향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빛과 그림자에서 점점 커지는 그림자<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엔화 약세는 수입 물가와 가계 생활비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점점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을 외국 관광객에게 저렴한 여행지로 탈바꿈시키고 동시에 일본 최대 수출업체들의 수익 증대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에서 엔화 약세는 물가 상승을 부추겨 가계 물가를 높이고 내수 기업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생활비 부담 증가는 현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집권하기 전 두 명의 총리가 실각하는 원인이 됐다.
미국의 압력도 의식해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엔화 약세가 일본 제조업체에 불공정한 무역의 이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며 오랫동안 비판해왔다. 이는 양국간 무역 협상에서도 주요 쟁점이 돼왔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고 엔화 가치가 적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선호하는 해결책임을 시사했다.
엔화 약세를 고착화시키는 3가지 요인<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중기적으로 가장 큰 것은 일본의 초저금리와 미국 및 기타 주요 경제국의 금리 간 격차이다. 엔화로 저렴하게 자금을 빌려 해외의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로 계속적인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6월에 기준금리를 31년 만에 최고 수준인 1%로 인상했으나 미국의 3.50% ~3.75%나 영국 3.75%, 유로존의 2.25%보다 여전히 크게 낮다. 물가 압력에도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속도도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재정 적자와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는 보다 근본적인 엔화 약세의 요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를 넘는 일본의 막대한 국가 부채는 주요 경제국중 최고 수준이다. 지속적인 재정 적자에도 다카이치 정부가 재정 능력 이상으로 지출하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전통적으로 안전 자산이었던 일본 엔화와 일본 자산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있다.
다시 고조된 중동의 지정학적 갈등과 이에 따른 유가 상승은 엔화에 결정타를 가하고 있다.일본은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한다. 또 석유 수입량의 95% 이상을 중동에서 가져오고 있어 이 지역의 공급 차질에 취약하다. 중동 전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시점에 석유 구매를 위한 달러 수요는 늘어나는 이중고가 엔화 약세를 가속화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엔화 가치는 더 약화되는 악순환 구조에 놓인 셈이다. 그나마 이는 국제 유가가 안정되면 해소될 수 있는 요인이다.
엔화 가치 지탱에 동원될 수 있는 수단은?<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가장 즉각적인 수단은 직접 외환시장 개입이다. 일본은 1조 9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로 시장에 개입할만한 충분한 재정적 여력은 갖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은 2024년 이후 네 차례의 개입에서 달러당 약 160엔의 환율 수준에서 거의 1천억 달러를 투입해 엔화를 사들였다. 그러나 최근의 시장 개입에서 큰 효과가 없었다는 부담이 있다.
이번 약세 국면에도 시장이 일본당국의 개입 관련 메시지를 무시하는 것도, 근본적인 요인을 개선하지 못하면 반복적인 개입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타야마 재무장관의 시장 개입 메시지가 효과없는 것으로 나타난 오후에 일본은행 관계자들이 “예상보다 금리를 빨리 인상할 가능성”을 언급하자 엔화는 잠시 162.70엔까지 회복됐다.
시장 역학을 바꾸려는 최근의 노력<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근본적으로는 국가 부채를 감축하고 정부 지출을 억제해야 하는데, 다카이치 정부는 확장 재정을 선호한다. 미국 등 주요국과의 금리 격차를 줄여야 하지만 이 역시 단기적으로 가능한 수단은 아니다.
최근 가타야마 사츠키 재무장관은 정부연금투자펀드(GPIF)를 비롯한 일본의 대형 연기금들에게 일본국내 자산 투자를 늘릴 것을 촉구했다. 또 개인을 위한 비과세 투자에 국채를 포함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가계와 GPIF가 일본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은 일시적으로 엔화 강세를 부추겼다. 일부 전략가들은 일본이 엔화 강세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NLI 연구소의 수석 경제학자인 우에노 츠요시는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 하락을 되돌릴 수 있는 즉각적인 수단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은 이를 알고 있으며,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