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최강 기사 신진서 9단과 현존 최고 사양 바둑 인공지능(AI) 카타고의 2점 접바둑 대결인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이 1승1패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21일 최종국을 맞이했다. 1국은 카타고의 완승, 2국에서는 신 9단이 멋진 반격으로 짜릿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앞선 두 번의 대국 모두 초반 포석에서 만족스러운 흐름을 만든 쪽이 승리했기에 최종국에서 양측이 어떤 포석을 들고나올지에 관심이 쏠렸다.
2국 패배가 영향을 미쳤을까. 카타고는 1·2국과 달리 첫수를 소목에 뒀다. 앞서 2국에서 신 9단은 첫수로 화점을 택했고, 카타고가 삼삼에 침입하자 대형 정석으로 이끌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번에 신 9단은 소목을 택했다. 같은 방식으로 승부를 풀어갈 생각은 없다는 듯한 착점이었다. 대국 뒤 신 9단은 화점과 소목이 아니라 “소목의 방향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첫수로 반대쪽 소목을 두면(10의 자리) 승률이 높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이기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만히 늘어둔 흑20은 카타고를 의식한 간명한 정석 선택. 무리하지 않고 두텁게 판을 짜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흑54~60의 수순도 카타고 맞춤 전략이다. 최대한 견고하게 두면서 후반을 도모하겠다는 기조를 읽을 수 있다.
카타고가 백69로 2선에 붙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과의 대국이라면 뒤로 받고(76의 자리) 좌상귀 백 진영의 뒷맛을 노리는 진행이 유력했겠지만, 신 9단은 한 점을 잡는 길을 택했다. 한 점을 버림돌 삼아 좌상을 자연스럽게 굳히려는 백의 주문에 순순히 응한 것이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변화의 여지를 줄이는 편이 카타고를 상대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듯했다.
신 9단은 기신전을 앞두고 훈련하며 AI의 수법을 모방하는 것보다 제 스타일대로 판을 짜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AI가 추천하는 정수는 이후의 변화까지 AI처럼 정확히 이어갈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정수라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거나 국면을 복잡하게 만든다면 그 수를 고집하기보다 자신이 더 잘 둘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편이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 9단의 계획대로 이번에도 집의 윤곽은 빠르게 확정됐고 판은 좁아졌다. 2국을 마친 뒤 “마음 같아서는 3국에서 큰 전투를 보여드리고 싶지만, 50수 만에 역전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으니 이창호 사범 같은 바둑을 두겠다”던 각오 그대로였다.
백이 79로 뻗어 집으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했을 때 신 9단은 깊은 고민 없이 중앙을 어깨 짚었다. 경쾌하게 착수한 흑80. 검토실의 프로기사들은 이 수를 승부를 결정지은 승착으로 꼽았다.
89의 곳에 밀지 않고 중앙을 젖혀간 흑84도 집으로는 약간 손해다. 하지만 이 역시 중앙을 가장 깔끔하게 정리하는 수였다. 흑84로 젖혔을 때 85로 뻗는 모양을 허용할 수 없는 백은 85·87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고, 흑은 89의 큰 자리를 포기한 대가로 자연스럽게 중앙을 굳혀갈 수 있었다. 중앙의 문을 걸어 잠근 후 마지막 남은 큰 자리인 110을 차지하자 아무리 카타고라고 해도 더 이상 해볼 곳이 없었다.
이번 대국에서 신 9단이 추구한 것은 화려한 내용이 아니라 이기는 바둑이었다. 그는 2승1패로 우승하며 AI와 함께 발전해온 인간 바둑의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채현지 월간바둑 필자·아마 6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