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 대리시험을 의뢰한 중국인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시험 브로커는 대리 응시자에게 위조 신분증을 지급하고, 송수신기로 답안을 전달하는 등 체계적으로 범행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 1월 29일 TOPIK 대리시험 브로커 A씨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 송치하고 범죄수익 약 1억5000만원을 추징했다고 21일 밝혔다. 대리시험을 의뢰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에 응시한 112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 중 위조신분증을 활용한 응시자에게는 공문서위조와 위조공문서행사 혐의도 적용됐다. 브로커 A씨와 대리시험 의뢰자, 응시자 모두 중국인이다.
경찰에 따르면 대리시험 총책 B씨는 중국 SNS ‘샤오홍슈’에 TOPIK 고득점을 보장하는 광고를 올려 의뢰자를 모집했다. 브로커 A씨는 의뢰자의 인적 사항을 총책 B씨에게 전달하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제작해 시험장을 선점하는 등 시험접수 전 과정을 관리했다. 국내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A씨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범행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리시험 조직은 의뢰자와 용모가 비슷한 대리 응시자를 모집하고, 위조 신분증을 제작해 지급했다. 신분증 사진과 얼굴을 맨눈으로 대조하는 방식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응시자는 지급받은 목 아랫부분에 송수신기를 부착하고, 귀에 소형 이어폰을 꽂은 채 시험을 치렀다. 조직이 불러주는 정답 관련 음성을 듣기 위해서였다. 또 감독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스마트폰 2대를 챙겼다. 1대는 시험 전 제출하고, 나머지 1대는 숨겨 송수신기 및 이어폰과 연결했다. 대리시험 조직이 어떻게 답을 미리 알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의뢰자들은 1인당 1만~3만5000위안(약 200만~800만원)을 지급하고 부정 시험을 의뢰했다. 단기간에 높은 급수가 필요하거나 정상적인 방식으로 목표 점수를 취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TOPIK I(1~2급)는 비자 취득 과정에서, TOPIK II(3~6급)는 국내 대학 입학과 졸업, 취업 등에 폭넓게 활용된다.
의뢰자들은 부정하게 취득한 성적을 국내 대학 입학과 졸업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유학생은 장학금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와 국립국제교육원은 부정행위로 취득한 성적을 각 대학에 통보해 입학 취소와 장학금 환수 등 후속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현행 시험 관리체계의 허점을 노린 조직적 범죄라고 판단했다. 감독관이 부정행위를 맨눈으로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관계 기관에 안면인식 기반 본인확인 시스템 도입과 금속탐지기 설치를 요청할 방침이다.
경찰 수사를 비웃듯 중국 SNS에서 TOPIK 대리시험 광고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은 대리시험 총책 B씨를 쫓는 한편 장비 전달책 2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계 기관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TOPIK 대리시험 관련 범죄 단속 활동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진영기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