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화폐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공습 재개로 산업시설 피해와 대규모 해고가 이어지며 이란 경제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19일 리알화는 달러당 195만 리알까지 하락했다. 이달 초 대비 약 10% 하락한 수준이다. 다만 월요일에는 일부 낙폭을 회복했다.
리알화 급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이란 항만 봉쇄를 재개한 이후 나타났다. 이란 정부는 미국이 최근 남부 해안과 내륙 지역의 교량과 철도, 공항 등 기반시설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경제는 지난 2월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이미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고물가와 국제 제재, 수년간의 정책 실패가 겹치면서다. 전쟁 이후 상황은 더 악화해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90%에 육박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40대 남성은 FT에 “어린 자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을 지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한다”면서도 “정부는 국민의 돈으로 전쟁 비용을 충당하면서 경제적 부담은 모두 서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경제 위기가 이란 정부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봤다. 영국 싱크탱크 보스앤드바자르재단 에스판디아르 바트망헬리드지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경제적 압박이 이란 당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실질적으로 약화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란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해지더라도 여전히 미군에 상당한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몇 달간 이어진 전쟁이 이란 경제에 남긴 피해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는 점은 공통된 평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 주 동안 정권 및 군사시설뿐 아니라 산업시설과 민간 기반 시설까지 폭격했다. 파테메 모하제라니 이란 정부 대변인은 지난 4월 전쟁 피해 규모를 2700억달러로 추산했다.
대규모 해고도 잇따랐다. 이란 노동부 차관은 지난 4월 전쟁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약 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밝혔다.
최근 이란을 방문한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이란 출신 경제학자 자바드 살레히 이스파하니 교수는 이란 정부가 상충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첫 번째 과제는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민의 생활 수준과 식량 소비를 유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물가가 초인플레이션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은 제재와 봉쇄에 따른 경제적 압박을 어느 정도 우회하는 방법을 익혀왔다”면서도 “물리적 파괴를 해결할 마법 같은 해법은 없다”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도 이날 “경제적 압박이 국민 불만을 확대한다면 이란의 군사적 성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적은 군사 공격만으로는 이란 국민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경제와 국민의 생계가 적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전선”이라고 강조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