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메모리는 비용 아닌 성능 변수"

입력 2026-08-04 06:00
수정 2026-08-04 14:42
[커버스토리] 반도체, 정점을 묻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지난 7월 7일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는 오히려 뒷걸음쳤다. 코스피에서는 매도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가 잇따라 발동됐다.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가 고개를 든 배경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조정을 실적이 아닌 수급의 문제로 진단했다. 그는 “이번 사이클은 ‘울트라 슈퍼사이클”이라며 “메모리 가격 상승은 내년 더 가팔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메모리가 컴퓨팅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다만 그는 “기술 자체가 버블은 아니지만, 금융이 앞서가는 상황은 조심해야 한다”며 인공지능(AI) 투자 열기에 대한 점검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매크로 환경과 금리, 수요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최대 실적에도 불구하고, 최근 시장이 조정을 겪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적 자체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번에 성과급 충당금을 상당히 많이 반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분기까지 포함해 17조 원가량을 반영한 것으로 보는데, 그게 아니었다면 106조~107조 원의 이익이 났다는 뜻입니다. 일부에서 100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시장 예상치 또는 그 이상으로 나왔다고 판단합니다. 업황이나 실적에 대한 걱정은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수급이 꼬여 있는 상태입니다. 쏠림이 심하다 보니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로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아래를 흔들면 주가가 과도하게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 트레이딩에 능한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아래로 빼놓고 더 낮은 가격에 다시 진입할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이 더 많은 것을 원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산업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습니까.

"반도체 산업을 이해하려면 먼저 누가 반도체를 사는지 봐야 합니다. 과거에는 델, HP 같은 PC 업체나 스마트폰 제조사가 핵심 고객이었다면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주요 수요처가 됐습니다. AI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반도체는 흔히 메모리와 비메모리로 구분하지만, 최근에는 특정 서비스나 제품에 맞춰 설계한 애플리케이션 특화 제품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애플의 자체 설계 칩입니다. 이런 제품이 현재 전체 반도체 시장의 약 40%까지 성장했습니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팹리스, 파운드리뿐 아니라 디자인 서비스, 조립·패키징, 설계 소프트웨어(EDA), 장비ㆍ소재 기업까지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특정 기업이나 반도체 하나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지도를 이해하고 있어야 자신이 어떤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 메모리 업체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였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메모리 가격은 4~9배 급상승했고, 일부 제품 마진은 90% 수준에 이릅니다. 올해 1분기 글로벌 기업 영업이익 순위를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빅테크와 나란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과거에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입니다. 최근 일본의 데이터센터 관련 기업들을 방문했는데, 보수적인 기업들조차 2030년까지 AI 인프라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도 이번 변화는 기존 사이클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대 수혜 기업이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공급 부족입니다. 과거에는 반도체 업체들이 대규모 투자를 해도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가격이 급락했고, 높은 수익은 애플 같은 완성품 업체나 빅테크가 가져가는 구조였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도 2023년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며 투자를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지만, 반도체 투자는 그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메모리 투자가 가장 뒤처져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를 100이라고 본다면, 메모리 투자는 30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전력·용수·인력 등 막대한 인프라가 필요하고 투자부터 양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2년 안에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산업이 아닙니다. 메모리 업체들이 증설에 나서더라도 과거처럼 곧바로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 ‘슈퍼사이클’이라고 봐야 합니까.

“과거 D램 가격이 2년 정도 상승하면 ‘슈퍼사이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슈퍼사이클이 아닌 ‘울트라 슈퍼사이클’입니다. D램이나 낸드 가격이 올해 평균 200%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년에는 더 올라갈 것으로 봅니다. 언론에서는 메모리 업체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를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HBM이 반도체의 돌파구는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 메모리 업체들이 높은 수익을 내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D램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입니다. HBM은 지난해 상반기 대부분의 가격 협상이 이뤄지면서, 현재는 오히려 마진이 가장 낮은 제품군에 속합니다. 지금은 내년 공급 물량을 놓고 HBM 가격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HBM 가격도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모리 시장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6.4%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과거 50년 평균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내년까지는 강한 업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내후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SK하이닉스의 공급 부족이 2030년까지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이번 메모리 호황은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지금은 단순한 경기 사이클로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를 보면 지난해 매출은 7917억달러였습니다. 저는 올해 1조637억달러로 107%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D램과 낸드를 합친 메모리 시장 규모는 2230억 달러였는데, 올해는 9000억 달러, 내년에는 1조3000억~1조4000억 달러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올해와 내년 메모리 성장률은 전체 반도체 시장 성장률보다 높고, 웬만해선 안 꺾일 것 같습니다. 과거를 보면 1980년대 D램 시장은 바닥에서 고점까지 매출이 6배 가까이 증가했고, 이후에도 5.3배, 6.2배 성장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암흑기였죠. 1995년 이후 매출을 다시 회복하는 데만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D램은 사실상 성장 산업이 아니었습니다. 20개 넘던 업체들이 대거 시장에서 퇴출됐고, 슈퍼사이클이 와도 시장 규모가 2~3배 늘어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현재 메모리 시장은 바닥에서 고점까지 20배 가까운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국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 기술적으로 무엇이 달라진 겁니까.

"과거 D램은 중앙처리장치(CPU)를 보조하는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PC에 탑재되는 부품 중 하나였고, 성능보다 가격 영향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PC 판매 가격이 있으면 D램 가격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가격이 정해져 있고, 가격이 오를 경우 메모리 용량을 줄여 원가를 맞췄습니다. 이제는 메모리가 ‘비용’이 아니라 ‘성능’ 변수입니다. 메모리를 많이 탑재할수록 AI 성능이 좋아지기 때문에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쉽게 줄일 수 없습니다. 특히 거대언어모델(LLM)로 메모리의 가치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모델의 파라미터가 클수록 성능이 높아지는데, 파라미터는 곧 메모리와 직결됩니다. 컨텍스트 윈도(context window)가 길어질수록 추론 능력이 향상되고, 더 많은 메모리 자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AI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메모리 수요는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만나보면, 요즘 개발자들은 10~20개의 AI 에이전트를 동시에 운용한다고 합니다. AI 에이전트가 확산될수록 처리해야 할 토큰이 급증하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서버와 메모리가 필요합니다. 클로드나 챗GPT 등 LLM 서비스는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메모리를 계속 꽂아야 하는 겁니다.”'




- 장기공급계약(LTA)도 많이 거론됩니다. 왜 장기공급계약이 중요합니까.

“마이크론 실적 발표 시 장기 계약이 화제였습니다. 보통 3년, 길게는 5년 계약을 맺는데 조건이 메모리 업체에 상당히 유리합니다. 일부 변동성은 있지만 하한선은 정해져 있습니다. 위로는 열려 있습니다. AI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한 명의 비서가 수십 명으로 늘어나는 셈입니다. 또 잠을 자는 동안에도 24시간 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사이클을 넘어선 구조적 변화(More than a cycle means structural change)’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투자가 늘어나고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이제는 공급이 늘어나면 AI가 더 강력해져서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과금을 할 수 있게 되고, 다시 투자가 늘어납니다. 과거 반도체 기술 경쟁력은 작고 싸게 만드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가 더 큰 용량과 빠른 속도를 구현하느냐가 경쟁력입니다. 메모리 업체들의 목표도 과거에는 ‘비용 절감’이었다면 지금은 ‘성능 향상’으로 판이 바뀌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고주가수익비율(PER)에 사서 저PER에 팔라’는 격언이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그렇다면 메모리 기업의 가치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컴퓨팅의 중심이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CPU가 중심이었고, AI 시대가 열리면서 GPU가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메모리가 AI 컴퓨팅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올해 실적이 아니라 내년입니다. 내년에는 삼성전자가 전 세계 영업이익 1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2위는 엔비디아, 3위는 SK하이닉스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의 영업이익을 합치면 빅테크 기업들의 이익 합계보다 많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가총액은 여전히 빅테크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메모리 기업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추론의 시대에 왜 메모리가 더 중요해집니까.

“AI를 이해하려면 학습(training)과 추론(inference)을 구분해야 합니다. AI는 토큰이라는 단위로 세상을 이해합니다. 학습은 토큰을 사용해 AI 모델의 파라미터를 세팅하는 과정입니다. 일단 모델이 완성되면 파라미터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AI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이제는 추론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추론은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파라미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며 새로운 토큰을 계속 생성하는 과정입니다. 학습 단계에서는 GPU가 얼마나 빠르게 행렬 연산을 수행하는지가 경쟁력이었다면, 추론 시대에는 분산된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불러오고 조합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계산을 잘하는 것보다 과거의 기억과 정보를 빠르게 찾아 종합적으로 답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셈이죠. KV 캐시에 계속 접근하면서 새로운 토큰을 생성하고, 여러 메모리에 분산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읽고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메모리의 역할이 훨씬 커집니다.”



-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될 수 있을까요.

“AI 수요는 당분간 계속 강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핵심은 빅테크들의 투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등 주요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줄일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메타가 보유한 일부 컴퓨팅 자원을 외부에 판매하거나 임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AI 투자가 둔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 흐름과는 다르게 봐야 합니다. 메타가 보유한 기존 GPU 자원 중 일부는 학습용으로 활용했던 장비이고, 현재 AI 시장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수요는 추론 영역입니다. 추론을 위해서는 새로운 고성능 컴퓨팅 자원이 계속 필요합니다."

- 반도체 피크아웃은 어떤 신호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정확히 언제 피크아웃이 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번 사이클은 정점을 찍더라도 과거처럼 급격하게 꺾이기보다는 완만한 조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다만 가격이 단기간에 크게 올랐기 때문에, 만약 예상과 달리 공급 과잉이 발생한다면 가격 조정 폭은 커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호황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지만 공급이 늘어나면서 3년 동안 가격이 약 90% 이상 떨어진 사례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빅테크들의 투자 계획입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의 투자 증가세가 둔화되는지가 중요한 신호가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공급 측면입니다.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늘리더라도 실제 물량이 늘어나는 것은 2년 정도 뒤입니다. 그때 신규 라인이 가동되고, 중국도 계속 생산능력을 확대하면 공급과 수요가 맞물리는 시점이 올 수 있습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과거 수차례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공격적으로 증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 애플 등 고객사의 대규모 투자 요구를 믿고 생산능력을 늘렸다가, 정작 주문이 줄면서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반도체는 공장을 지으면 가동을 멈추기 어렵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런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공급 조절에 신중할 것으로 봅니다. 또한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매크로 이슈, 특히 인플레이션과 금리 흐름입니다.”

- AI 투자 열기가 과거처럼 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습니까.

“1840년대 영국 철도 버블이 있었습니다. 당시 철도는 실체 없는 투기였던 튤립 버블과 달랐습니다. 실제 인프라였고 국가가 노선을 승인할 정도로 산업적 기반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과잉 투자가 발생했고, 일부 중복 노선이 드러나면서 시장은 무너졌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1847년 영란은행의 금리 인상이었습니다. 현재 AI 투자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AI는 실제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고, 과거 철도나 전기처럼 산업 구조를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문제는 금융입니다. 최근 코어위브, 네비우스 같은 네오클라우드 업체들이 차입을 통해 투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만약 금리가 다시 올라간다면 이런 기업들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1920년대 미국 전기 산업도 비슷했습니다. 전기는 버블이 아니었습니다. 전기는 결국 산업과 생활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당시에도 전기를 두고 ‘모든 것을 바꾸는 기술’이라고 했죠. GPT(General Purpose Technology)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가 문제가 됐고 주가는 크게 조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기술이 버블인 것은 아닙니다. 철도도, 전기도 죄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금융이었습니다. 기술의 성장 속도보다 자금이 너무 앞서가면 버블이 생길 수 있습니다. AI 자체는 장기적인 성장 산업이지만, 일부 기업의 밸류에이션이나 레버리지 투자는 따져봐야 합니다.”



- 장기적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변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큰 변수는 '포스트 트랜스포머(post-transformer)'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AI 모델은 트랜스포머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데, 성능은 뛰어나지만 반도체와 전력 소모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더 적은 연산과 메모리로 비슷한 성능을 구현하려는 새로운 AI 모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스탠퍼드대 등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한데, 이런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AI 인프라 투자 속도나 메모리 수요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 생성형 AI 시장의 수익성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현재 생성형 AI 시장의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앤트로픽은 연간 반복 매출(ARR)이 빠르게 증가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주요 고객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부적으로 클로드 사용량이 예상보다 크게 늘면서 비용 부담을 이유로 사용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 달에 약 5억 달러를 클로드 이용 비용으로 지출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를 연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60억 달러 규모의 ARR 감소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AI 수요가 꺾인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던 성장률이 다소 둔화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 시장이 이런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 중국의 반도체 추격도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중국 반도체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007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0시부터 0시까지, 주7일 근무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교대는 하지만 연구실 불이 꺼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 패권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죠. 우리는 6시면 불이 다 꺼집니다. 또 성과급 이슈도 우려 요인입니다. 성과급 격차가 벌어지면서 내부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에 NEC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일본 기술의 총화라 불렸고 한때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었습니다. NEC도 사업부별 성과급 차이가 커지면서 내부 갈등이 생겼고 시너지를 잃었습니다. 결국 메모리 사업은 떨어져 나가 엘피다가 됐고, 엘피다는 이후 마이크론으로 넘어갔습니다. 비메모리 쪽은 지금의 르네사스가 됐습니다. 반도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지금의 논의가 이 거위를 어떻게 잘 키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배를 가를까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



- 향후 관전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7월 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빅테크의 실적 발표입니다. 이 회사들이 '투자를 더 하겠다'고 하면 괜찮지만, 직전 분기에 발표한 투자 계획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그친다면 '지금 이 가격에 살 이유는 없다'고 판단하는 투자자가 꽤 있을 것으로 봅니다. 현재는 실적에 비해 지금 주가가 지나치게 낮아졌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주가는 실적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수급이 중요합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의 실적이 좋아도 원화 가치가 계속 약세를 보이면 원화 자산을 보유할 이유가 줄어듭니다. 수출이 크게 늘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면 원화 강세가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현재 원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원화 안정이 필요하고, MSCI 선진국지수 편입 등 제도 개선도 중요해 보입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