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후 30년 만에 무역과 산업 정책 등에서 각국 입장이 극적으로 뒤바뀌었다. 과거 자유무역을 강조한 유럽연합(EU)은 최근 전기자동차 관세율을 최대 45%로 올렸다. 1기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7년부터 관세로 시장 진입을 틀어막은 미국에 이은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이집트 등 개발도상국은 공기업 민영화 등 자유시장경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로 흘러간 투자 자금은 최근 역류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대만 주도로 2020년 이후 이뤄진 세계 반도체 설비 투자의 47%가 미국에 집중됐다. 세계 경제가 극적인 ‘롤체인지’ 시대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내놓은 ‘세계투자보고서 2026’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도입되거나 강화된 외국인 투자 심사 조치는 모두 선진국에서 나왔다.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 자유화를 위한 개혁은 전부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졌다. 아시아가 21건, 아프리카가 5건, 중남미가 3건이었다.
산업 정책에서도 선진국은 정부 역할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연설에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강조했다. 미국은 반도체법(칩스법)으로 보조금 390억달러(약 58조원)와 25% 투자세액공제를 내걸었다. 일본이 2022년 이후 반도체산업에 쏟아부은 보조금은 257억달러(약 38조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대 규모였다. 중국의 공격적인 산업 보조금 정책을 비판하던 선진국들의 변신에 “중국발 ‘중상주의’(국가 개입을 통한 무역수지 흑자 극대화) 물결이 선진국 경제를 뒤덮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세계 경제에서 놀라운 역할 역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향한 서방 강대국의 추파가 노골화하는 사이 많은 개발도상국은 성장에 불을 붙이기 위해 오랫동안 검증된 자유화와 민영화 정석을 마침내 따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김미리/김주완 기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