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 각서 쓰고 싸우다 숨졌는데…아파트 동대표 폭행치사 '무죄'

입력 2026-07-20 17:04
아파트 동대표 회의 중 말다툼을 벌이다 이웃 동대표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도 폭행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폭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하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법 제1형사부(고법판사 신현일)는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이에 따라 폭행치사 혐의는 무죄로 보고, 폭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이 유지됐다. A씨에게 선고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80시간도 그대로 확정됐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얼굴 부위를 발로 걷어찼고 얼굴 부위가 치명적일 수 있기는 하나, 피고인이 당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몸을 붙잡힌 상태에서 얼굴을 걷어찬 것으로 보여 온 힘을 다해 강하게 걷어차는 건 어려웠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양형에 대해서도 "이미 원심이 형을 정할 때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24년 2월 28일 오후 7시40분께 경기 평택시의 한 아파트 회의실에서 동대표 회의를 하던 중 이웃 동대표인 50대 B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두 사람은 회의 과정에서 의견 충돌을 빚었다. 이후 합의한 뒤 회의실 밖으로 나가 서로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B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여러 차례 때리고 머리 부위를 발로 한 차례 걷어찼다. B씨는 몇 걸음 뒤로 이동하다 바닥에 쓰러졌다.

B씨는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B씨의 사망 원인을 급성심장사로 판단했다. 다만 사건 발생부터 사망까지의 경과를 고려하면 두 사람의 다툼이 사망을 유발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도 폭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폭행 후 별다른 심장질환이 없던 피해자가 급성심장사로 사망에 이르렀다면 폭행과 사망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봄이 합리적"이라고 판시했다.

다만 A씨가 자신의 폭행으로 B씨가 숨질 수 있다는 사실까지 예상하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신의 폭행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은 입증되지 않았다"며 폭행치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먼저 피고인에게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제안해 피고인이 이를 수락하고 본격적인 몸싸움이 시작됐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폭행 당시 피해자가 심장의 통증을 호소했다는 등의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폭행으로 피해자가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