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무주택자 40대 직장인입니다. 전셋값이 계속 올라서 점점 외곽지 전셋집으로 몰리는 와중에 이제 대출한도가 줄어 집 살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몇십억원 고가 주택을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세 식구 맘 편히 살 수 있게 국평 아파트 한 채 사서 미래를 그려보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습니다."
정부가 오는 23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여는 '부동산 정책 국민 대토론회'를 앞두고 개설한 온라인 의견수렴 페이지에 국민 제안이 쇄도하고 있다.
20일 오전 11시 기준 접수된 정책 제안은 2000건을 넘어섰고, 이 중 상당수는 대출 규제부터 풀어달라는 내용이다. 정부는 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재정경제부가 사흘에 걸쳐 공급·금융·세제로 나눠 사전토론회를 열었으며, 수렴한 의견을 이달 말 발표할 세법개정안 등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대다수 국민이 직접 영향을 받는 '주택금융' 분야에는 960건에 달하는 제안이 몰렸다.
이런 민심의 배경에는 지난 8일 전격 시행된 대출 규제 강화 조치가 있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소득이나 집값과 무관하게 6억원으로 묶었고, 생애최초 대출의 LTV도 80%에서 70%로 낮췄다. 유예 기간 없이 발표 당일 곧바로 시행되면서 일주일 만에 계약 파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10일부터 수도권·규제지역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를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자체 축소하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수도권에 14억원대 아파트를 계약하고 10월 말 잔금을 앞두고 있던 한 매수자는 대출 한도가 5억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갑자기 줄면서, 계약금을 지키기 위해 금리가 3~4배 높은 제3금융권 대출까지 알아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는 11억원짜리 소형 아파트를 매수하며 집주인에게 약정금 5000만원을 낸 30대 실수요자가 토지거래허가를 기다리는 중인데 대출이 축소되면 허가가 나와도 잔금이 모자랄 처지에 놓였다.
서울 노원·도봉·강북, 금천·관악·구로 등 15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외곽 지역에서도 대출 한도가 6억원에서 4억원으로 줄어든 사례가 속출했다. 대출 실행일이 50일 이상 남아 은행에 서류를 제출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출 오픈런"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세 자녀를 둔 한 신혼부부는 신생아 우선공급 청약에 당첨돼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냈지만 잔금대출 단계에서 6억원 한도에 막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청와대 정책실장조차 브리핑에서, 큰 금액도 아닌데 6억원 한도 때문에 집을 못 사는 청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고민을 밝혔다.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이 12억5500만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6억원 대출로는 청년층이 자력으로 집을 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무주택 40대 직장인은 전셋값이 오를 때마다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처지를 호소하며, 국민평형 아파트 한 채로 세 식구가 안정적으로 살 계획이 대출 한도 축소로 무산됐다고 했다. 고가 주택을 원하는 게 아니라며, 무주택 이력이 확실하고 투기 목적이 없는 실거주 실수요자에 한해서라도 대출 한도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1주택자로 매도 계약을 마치고 갈아탈 집의 매수 계약을 앞둔 한 국민은 최근의 대출 규제를 "도박판"에 비유했다. MCI 가입 중단, 대출 한도 축소 등이 예고 없이 잇달아 나오면서, 계약 당시엔 이행 가능하던 조건이 하루아침에 이행 불가능해져 계약금을 날릴까 불안하다는 것이다.
은퇴를 앞둔 한 무주택·저자산 직장인은 조금 다른 각도의 사연을 전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큰 재산 없이 평생 회사에 다닌 그는 노후 대비 차원에서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들여 서울 외곽·경기 지역에 5억~6억원대 아파트 두 채를 매입했다. 한 채는 본인이 거주하고, 나머지 한 채는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청년에게 임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는 지역의 중저가 주택 두 채를 합쳐도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에 못 미치는데, 단순히 '2주택자'로 분류돼 시장 불안의 원인처럼 취급받는 것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모든 부동산 문제의 원인은 '똘똘한 한 채'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며 "주택 수가 문제가 아니라 보유 주택 총합의 가격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작성자 추 모 씨도 현재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을 똘똘한 한채가 부른 주택시장의 초양극화로 꼽았다.
그는 "다주택자 규제로 인해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커지고 있다"면서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초고가 1주택 대비 지방 혹은 비선호 지역의 다주택자에게 징벌적인 과세를 하고 있고 이로 인해 똘똘이 한채가 더 선호되고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부작용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모 씨 또한 "도대체 비거주1주택 보유세는 왜 올리나"라고 성토하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집에서만 사나. 내 집 세주고 다른 곳 세들어사는게 죄인가. 왜 세금을 징벌적으로 때리나"라고 했다. 이어 "비거주 거주 갈라치기하는거 멈춰라"라며 "세놓고 세살고 이렇게 알아서 잘 굴러가던 시장을 왜 들쑤셔서 이렇게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같은 상황을 겨냥해 비판했다. 세제 토론회의 핵심 의제가 이미 '보유세 강화'로 설정돼 있어, 국민 의견 수렴이 형식적 절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아울러 이번 대출 규제가 다주택자나 갭투자보다 오히려 대출이 꼭 필요한 청년·실수요자에게 더 큰 타격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을 소득도 집값도 따지지 않고 6억원으로 묶었다"며 "집값 대비 얼마까지 빌려주는지를 뜻하는 LTV도 손댔다. 태어나서 처음 집을 사는 생애최초 대출의 LTV를 80%에서 70%로 깎았다"고 했다.
이어 "명분은 전세를 끼고 집을 여러 채 사들이는 다주택자·갭투자를 잡겠다는 것이었지만, 현금 있는 사람은 그대로 샀고 대출이 필요한 젊은 세대만 발이 묶였다"며 "유예 기간도 없이 발표 당일 시행돼, 일주일 만에 계약 255건이 깨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남 3구와 용산을 넘어, 사고팔 때 정부 허가부터 받아야 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서울 시내 아파트 전부를 묶은 것도 이 정부다"라며 "23일 회의와 뒤이어 나올 종합대책의 방향은 세금 인상이 아니라 대출 정상화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부동산정책 관련 국민 의견 수렴계획' 보고를 받던 중, 실거주 1주택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이른바 '똘똘한 한 채'나 100억원 이상의 초고가 주택까지 똑같이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유튜브 생중계 댓글로 실시간 여론조사까지 진행했는데, 초고가 주택에 차별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방안에 응답자의 약 90%가 찬성했다고 보고받자 이를 국민적 공감대로 해석했다. 이어 초고가 주택 기준가에 대한 투표에서는 "시가 30억 원은 가혹하다"며, 공시가격 기준으로는 10억원대 후반에 불과해 너무 많은 주택이 초고가로 분류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이 발언 이후 시장에서는 초고가 1주택 기준이 시가 40억~50억원 선에서 정해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